의령 수파정
의령 수파정 Supajeong Ritual House, Uir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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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의령 수파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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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upajeong Ritual House, Uiryeong |
한자 | 宜寧 水坡亭 |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2길 7-10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50호 |
지정(등록)일 | 2018년 8월 3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1개동(131.1㎡) |
웹사이트 | 의령 수파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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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의령 수파정은 수파 안효제(1850~1916)를 기리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안효제는 경남 의령 부림면 입산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고종 20년(1883)에 관직에 올랐다. 무녀의 궁중출입 폐해와 부패 등에 대한 글을 임금께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추자도로 유배되었다. 1895년에 내린 단반령에 반대하였고,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 일본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으나 굴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수파정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일반적인 재실과 달리 마루와 방을 교차하여 놓아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으며,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근대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건립연도 등 건물의 연혁 정보가 없음.
영문
Supajeong Ritual House, Uiryeong
This ritual house located in Ipsan-ri, a clan village of the Tamjin An clan, was built for the preparation of rituals for An Hyo-je (1850-1916, pen name: Supa),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 Hyo-je was born in Ipsan-ri.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883 and went on to serve in official posts. In 1895, he vehemently opposed the ordinance prohibiting topknots implemented by a pro-modernization faction and retired to his hometown. At the start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he was both threatened and enticed by the Japanese regime, but he never succumbed to their tactics. In 1912, he sought asylum in Manchuria where he died promoting the anti-Japanese movement. In 1919, An Hyo-je’s remains were brought back to his home village where they were laid to rest.
A ritual house typically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to each side. This ritual hall, however, has a wooden-floored porch added to the left. This layout is employed for better use of space and is a feature of 20th-century architecture.
영문 해설 내용
조선 말의 문신 안효제(1850-1916, 호: 수파)를 기리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안효제는 탐진안씨 집성촌인 입산마을 출신으로 1883년 과거에 급제한 후 관직에 올랐다. 1895년 조선의 개화파가 주도한 근대화운동의 하나인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에 극력 반대하였고 이후 고향에서 은거하였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는 일본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으며, 1912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하다가 병사하였다. 안효제의 유해는 1919년 의령으로 돌아와 안장되었다.
일반적인 재실 건물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는데, 수파정은 왼쪽에서부터 마루, 온돌방, 마루, 온돌방의 순서로 배치되어있다. 이러한 구조는 공간의 활용도를 높인 20세기 건축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