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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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심우장
Han Yong-un’s Simujang House
만해 한용운 심우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만해 한용운 심우장
영문명칭 Han Yong-un’s Simujang House
한자 萬海 韓龍雲 尋牛莊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550호
지정(등록)일 2019년 04월 08일
소유자 성북구
수량/면적 1동, 88.6㎡(보호구역386.4㎡)
웹사이트 만해 한용운 심우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집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관리동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등이 있다.

심우장은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은 집으로, 이곳에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 뒤로는 식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찬 마루방이 있다.

한용운의 서재였던 온돌방에는 심우장(尋牛莊)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이름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일대는 1930년대 서울이 확장되면서 주거지로 개발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여느 집과는 다르게 검소하고 소박한 외향을 보여 준다. 한용운은 조선의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승려이자 조국의 독립에 힘쓴 독립운동가이며 근대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었다.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그의 이 같은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인 심우장은 1985년 7월 5일 서울시지정문화재 기념물 제7호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9년 4월 8일 사적 제550호로 승격하여 지정되었다.

영문

Han Yong-un’s Simujang House

This is the house where Han Yong-un (1879-1944, pen name: Manhae), a Buddhist monk, poet, and independence activist, lived from 1933 until his death.

Born in Hongseong in Chungcheongnam-do Province, Han became a monk in 1905 at Baekdamsa Temple in Seoraksan Mountain. He tried to popularize Buddhism by translating Buddhist texts into vernacular Korean and led a reform movement for Korean Buddhism. He was one of the 33 national representatives who announce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1919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nd wrote a part of the declaration. His poetry expresses Buddhist thoughts and his strong will for national independence.

This house was built in 1933 as a place for Han to spend his later years. It was intentionally built facing north, which is uncommon, so that it did not face the direct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s Building (at today's Gwanghwamun Gate).

The house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 underfloor-heated room on the left, and a kitchen on the right. The wooden plaque in front of the room bears the name of this house, Simujang. "Simu" in the name means “searching for the lost ox.” This phrase comes from a Buddhist tale that compares searching for an ox to a spiritual journey in search of enlightenment.

SHORT VERSION

This is the house where Han Yong-un (1879-1944, pen name: Manhae), a Buddhist monk, poet, and independence activist, lived from 1933 until his death.

Han was one of the 33 national representatives of the 1919 Declaration of Independen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He also tried to popularize Buddhism by translating Buddhist texts into vernacular Korean. His poetry expresses Buddhist thoughts and his desire for national independence.

The name of the house means “searching for the lost ox,” and comes from a Buddhist tale that compares searching for an ox to a spiritual journey in search of enlightenment.

  • 99 words

영문 해설 내용

일제강점기의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인 한용운(1879-1944, 호: 만해)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한용운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1905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불교 경전을 우리말로 옮겨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불교 개혁에 앞장섰다. 1919년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의 일부를 작성하였다. 다양한 시를 통해 불교사상과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담아냈다.

이 집은 1933년 한용운이 말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남쪽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북향으로 지었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에 부엌이 있다. 온돌방 전면에 걸린 현판에는 ‘심우장’이라는 이 집의 이름이 쓰여있다. ‘심우’는 ‘소를 찾는다’는 뜻으로,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