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장육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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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장육당
Jangyukdang Hall, Goryeong
고령 장육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령 장육당
영문명칭 Jangyukdang Hall, Goryeong
한자 高靈 藏六堂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478-2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7호
지정(등록)일 2017년 5월 1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고령 장육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령 장육당은 조선 후기 학자인 이윤(李玧)이 현종 2년(1671)에 사랑채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

장육당(藏六堂)이라는 이름은 이윤의 호(號)이기도 하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거북처럼 여섯 가지를 감추고 은거하고 있는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육당은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는 지형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평탄한 기단을 만들었다. 건물의 전체 모습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T자형 기와집이다. 앞부분의 4칸은 마루로 사용하고, 본 건물에는 4칸의 방과 측칸으로 이어진 1칸의 누마루*가 뒤편에 붙어있다.


  • 누마루: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영문

Jangyukdang Hall, Goryeong

This hall was established in 1671 by the scholar Yi Yun (1611-1686, pen name: Jangyukdang) to be used as his private study. It was repaired in 1968.

A stone staircase following the natural shape of the gentle slope leads to the building. The building has a T-shaped layout, with a wooden-floored veranda in the front and two underfloor-heated rooms in the back. There is an elevated wooden-floored porch in the right.

The building has tile-roof with double eaves.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double eaves could only be used in the roofs of palaces, residences of the extended royal family, or Buddhist temples. It is said that this building could use double eaves because Yi Yun’s mother was a descendant of King Seongjong (r. 1469-1495).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이윤(1611-1686, 호: 장육당)이 공부방으로 쓰기 위해 1671년에 세웠다. 지금의 건물은 1968년에 중수한 것이다.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지형에 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T’자형의 평면구조로, 돌출된 앞부분에 마루를 두었고 건물 뒤쪽에는 온돌방 2개가 있고 오른쪽에 누마루가 있다.

이 건물의 지붕은 겹처마로 되어 있다. 이러한 지붕은 사찰이나 궁궐 등에서나 쓸 수 있던 건축방식이다. 이 집은 일반 민가이지만 이윤의 어머니가 조선 성종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겹처마를 설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 이윤의 외조부(外祖父)인 대사헌 이각(李覺)이 이이첨(李爾瞻)과 함께 폐모론(廢母論)을 내세워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幽閉)시키고 서인(庶人)으로 만들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주살(誅殺)되었다. 아버지 이지화(李之華)는 이이첨(李爾瞻)을 탄핵하다가 파직되었고 이때 백형 이지영(李之英)과 함께 휴수동귀시(携手同歸詩)를 남기고 낙향(落鄕)하는 등 친가(親家)와 외가(外家)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 부연(婦椽)은 처마 서까래의 끝에 덧얹는 네모지고 짧은 서까래를 말하는데 왕궁(王宮)에서나 할 수 있는 건축 기법이다. 이윤(李玧)이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역임한 이지화(李之華)와 성종의 아홉째 아들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의 5세손 이각(李覺)의 따님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왕가(王家)의 외손(外孫)이었으므로 부연(婦椽)을 달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 겹처마의 연목(椽木)을 잡아주는 평고대(平高臺)는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통평고대로 고식(古式)의 수법(手法)을 간직하고 있다.
  • 오른쪽은 블록 담장으로 둘러져 있으며 뒤쪽 담장에는 사가(私家)와 연결되던 협문(夾門)의 흔적이 보인다. 이외에도 주출입구인 사주문(四柱門)과 입구 왼쪽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관리사(管理舍)가 부설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