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목단
충목단 Chungmokdan Al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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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충목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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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ungmokdan Altar |
한자 | 忠穆壇 |
주소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소흘로116번길 13 (무봉리)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02호 |
지정(등록)일 | 1987년 2월 1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충목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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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충목단은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유응부(兪應孚, ?~145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제단이다. 유응부는 조선전기 포천시 소흘읍 출신의 무신으로 자는 신지(信之), 호는 벽량(碧梁),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그는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고 1455년(단종 3) 4월 판강계도호부사(判江界 都護府使)를 거쳐, 같은 해 6월 세조가 즉위한 뒤 왕명의 출납 및 왕실을 호위하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연회가 열렸는데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유응부와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成勝) 등을 별운검(別雲劍)으로 선정해, 그 자리에서 세조를 살해하고 단종을 다시 세우기로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 후 유응부는 1691년(숙종 17)에 사육신의 관직을 회복하였고 서울시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묘에 안장되어 있다. 현재 충목단에는 1746년(영조 22)에 세운 작은 비석과 상석으로 된 제단이 있고 중앙 상단에 총관 유응부, 좌측에 한남군 이어(漢南君 李𤥽), 우측에 병마절도사 양치(楊治)의 제단이 있다.
영문
Chungmokdan Altar
This altar was built to honor Yu Eung-bu (?-1456), Yi Eo (?-1459), and Yang Chi (1400-1485).
Yu Eung-bu was a military official born in Pocheon. When in 1455 King Danjong’s (r. 1452-1455) throne was usurped by his uncle King Sejo (r. 1455-1468), Yu together with others opposing the new king plotted to kill King Sejo and return the throne to King Danjong. However, their plan was exposed, and as a result, Yu Eung-bu was tortured and executed.
Yi Eo was the fourth son of King Sejong (r. 1418-1450), born from a concubine. In 1455, he attempted to return the throne to his nephew King Danjong but did not succeed and therefore was exiled and died in 1459.
Yang Chi was a military official born in Pocheon. Distraught with the usurpation of King Danjong’s (r. 1452-1455) throne, he retired from his post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Pocheon to spend the rest of his life seclusion.
Chungmokdan was first built in 1746 to enshrine the stele and altar honoring Yu Eung-bu, but was demolished in 1864 by a nationwide decree. In 1890, it was rebuilt, this time with the steles of Yi Eo and Yang Chi added to the left and right of Yu Eung-bu’s stele, respectively.
영문 해설 내용
충목단은 유응부(?~1456), 이어(?~1459), 양치(1400~1485)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제단이다.
유응부는 포천 출신의 무신이다. 1455년 단종(재위 1452~1455)이 숙부인 세조(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이듬해 유응부를 비롯하여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창덕궁 연회에서 세조를 살해하고 단종을 다시 세우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모의가 발각되었고,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처형되었다. 이때 죽임을 당한 대표적인 여섯 사람을 사육신이라 부른다.
이어는 조선 제4대 왕 세종의 넷째 서자인 왕자이다. 1455년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실패하여 유배당했고, 1459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양치는 포천 출신의 무신으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포천에 은거하였다.
현재 충목단에는 세 개의 비석과 제단이 있다. 원래 충목단은 1746년에 처음 설치되었고, 유응부를 기리는 비석과 제단이 봉안되었다. 그러나 1864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서 파괴되었다가 1890년에 다시 지었다. 이때 이어와 양치를 기리는 비석을 각각 유응부의 비석 왼쪽과 오른쪽에 추가로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