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구산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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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구산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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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사천 구산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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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泗川 龜山祠碑 |
주소 |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구암리 산 43 |
지정(등록) 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635호 |
지정(등록)일 | 2018.08.09 |
분류 | 등록문화재 / 기타 / 인물기념시설 |
수량/면적 | 1기/1.5㎡ |
웹사이트 | "사천구산사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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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사천 구산사비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정(李楨, 1512~1571)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인조 23년(1645)에 세웠다.
구산사비에는 조선 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이끈 허목(許穆)이 짓고 쓴 비문이 있다. 이 비석의 귀부*, 비신**, 이수***의 보존 상태가 좋다.
귀부는 툭 불거져 나온 눈과 코, 두터운 입술을 조각하여 놓은 것이 특징이다.
비신 앞쪽은 ‘구산사비’라는 글씨가 전서체로 쓰여 있고, 뒤쪽에는 이정의 관직 생활, 성품, 학문 등에 관한 내용이 해서체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던 허목의 글씨를 새겨 놓아 서예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수는 여덟 마리의 용이 서로 엉켜있는 모양인데 앞쪽 가운데는 여의주를 새겼고, 위쪽은 연꽃봉오리 등의 장식을 조각하였다. 일반적으로 용은 홀수로 조각하나 귀부의 위를 용의 머리 모양으로 조각하여 결과적으로는 아홉 마리의 용이 되었다.
- 귀부(龜趺) : 거북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 비신(碑身) : 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
- 이수(螭首) : 건축물이나 공예품 따위에 뿔 없는 용의 모양을 아로새긴 형상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사천 구산사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정(1512~1571)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1611년에 지은 사당이다. 이어 1645년에는 사당 뜰 아래에 구산사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조선 후기 이름난 학자이자 서예가인 허목(1595-1682)이 쓴 비명이 있는데, “구산사의 비”라는 뜻이다. 뒷면에는 이정의 관직 생활, 성품, 학문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머릿돌에는 여덟 마리의 용이 서로 엉켜있는 모양인데 앞쪽 가운데는 여의주를 새겼고, 위쪽은 연꽃봉오리 등의 장식을 조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