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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조명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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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조명군총
사천 조명군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사천 조명군총
한자 泗川 朝明軍塚
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402
지정(등록) 종목 시도기념물 제80호
지정(등록)일 1985년 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322㎡
웹사이트 사천 조명군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천 조명군총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선진리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을 몰아내고자 결전을 벌이다 전사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집단 무덤이다. 명나라 군의 전사자가 훨씬 많아 ‘당병무덤’, ‘뎅강무데기’라 불리기도 하였다. 무덤은 사방 36m의 네모반듯한 모양이다.

싸움이 한창 진행될 즈음 우리 편 군대 진영의 화약고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일어나자 왜군은 이를 틈타 역습을 하였다. 이때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왜군은 그들의 승리를 본국에 알리려고 죽은 군사들의 귀와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내었다. 조선 사람들은 싸움이 끝나고 귀와 코, 목이 베어진 전사자들을 수습하여 한데 모아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을 돌보는 사람이 없어 약 40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983년 사천문화원과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어 무덤을 정비하였다. 그 후 해마다 음력 10월 1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1597년 정유재란 때 전사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집단 무덤이다.

정유재란을 일으켜 북진하던 일본군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저항을 받자 남해안 지방으로 퇴각하여 곳곳에 성을 쌓고 머물고 있었다. 사천 지역에서는 선진리성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조명연합군은 이들을 몰아내고자 결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연합군 진영에서 화약고가 폭발하였는데, 이때 어수선한 틈을 노린 일본군의 역습으로 수천 명이 희생되었다. 일본군은 그들의 승리를 본국에 알리기 위해 죽은 군사들의 귀와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내고, 목을 베어 묻어 큰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을 돌보는 사람이 없어 400년 가까이 방치되었다가, 1983년 사천문화원과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어 무덤을 정비하였다. 그 후 해마다 음력 10월 1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