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선진리성
사천 선진리성 Japanese Fortress in Seonjin-ri, Sa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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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사천 선진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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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apanese Fortress in Seonjin-ri, Sacheon |
한자 | 泗川 船津里城 |
주소 |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770번지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274호 |
지정(등록)일 | 1998년 11월 13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사천 선진리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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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사천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주둔한 왜군이 일본식으로 지은 성이다. 사천읍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선진리 북쪽의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대부분 복원된 형태로 남아 있다.
당시 북진하던 왜군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저항하자 경상도 남해안 지방으로 물러나 남해안 곳곳에 성을 쌓고 머물렀는데 그때 쌓은 성 중 하나가 선진리성이다.
이 성은 기록에 따르면 왜군 장수 11명이 1597년 10월 29일부터 12월 27일까지 지휘하여 쌓았다고 한다. 성안에는 많은 건축물이 있었고, 성 주위에는 해자*와 나무 울타리가 설치되었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항구로 유명했으며 선진**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려 시대 전국 12조창*** 중 하나인 통양창(通洋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은 왜군이 활동하기 위한 주요 근거지였기 때문에 한때 이순신 장군에게 격파당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선진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 해자(垓字): 성 주위로 들러 판 못
- 선진(先陣): 지휘를 하는 본부가 있던 군영의 앞에 자리 잡거나 앞장서서 나아가는 부대
- 조창(漕倉) : 전국 각 지방에서 조세의 명목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저장, 운영하던 국영 창고. 주로 해안이나 하천의 포구에 설치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7년 당시 사천 지역에 머무르던 일본군이 지은 성이다. 현재의 석축 성벽과 성문은 2000년대에 새로 지은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9-10세기경에 만들어진 토성이 있었다. 인근 지역은 고려시대에는 조창이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전함이 배치되는 등 오랫동안 주요 항구로 사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 의해 격파당하였다.
이후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일본군은 남해안 지역에 머무르며 곳곳에 성을 쌓았다. 그때 쌓은 성 중 하나가 선진리성이며, 선진리성은 원래 이곳에 있던 토성 위에 지어졌다. 성안에는 많은 건축물이 있었고, 성 주위에는 해자와 나무 울타리를 둘렀다.
현재는 선진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592년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 승리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