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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헌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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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9월 26일 (목) 17:12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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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헌종택
Mukheon Head House
"묵헌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묵헌종택
영문명칭 Mukheon Head House
한자 默軒宗宅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로3길 13-5 (석전리)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245호
지정(등록)일 1991년 5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묵헌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져 대대로 사는 집을 뜻한다. 묵헌종택은 묵헌 이만운(李萬運, 1736~1820)의 종택이다. 이만운은 퇴계 이황, 한강 정구, 문익공 이원정을 잇는 정통 성리학자로 우리 국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증보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등을 편찬하였다.

이 집은 정침(안채)과 사랑채, 사당,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과 사랑채는 조선시대 학자였던 문익공 이원정(文翼公 李元禎)의 아들 이한명(李漢命)이 현종 11년(1670)에 지었으며, 사당은 이원정의 5대손인 이만운이 별세한 후 유림의 뜻에 따라 순조 20년(1820)에 지었다. 대문채는 1996년에 새로 지로 지은 것으로 예전에는 방앗간채도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가 나오는데, 가운데 중문을 두지 않고 10칸이 ‘一’ 형으로 연이어 있는 매우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정침은 ‘튼 ㅁ’ 형으로 되어 있으며, 정침의 우측에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만운의 불천위를 모시고 있다. 건물들의 배치형태가 개방적이며, 지역적인 특색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영문

Mukheon Head House

This is the head house of the family of Yi Man-un (1736-1820),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late Joseon period.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Yi Man-un, born in Chilgok, was virtuous and talented in writing. He was also well informed in astronomy, geography and calculation. Famous for such learning, he participated for nine years in the compilation of a supplement to a well-known encyclopedic work created on royal order which encompasses the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systems of the Joseon dynasty.

This house consists of a women’s quarters, men’s quarters, gate quarters, and shrine for Yi Man-un. The women’s quarters and men’s quarters were built in 1670 by Yi Han-myeong (1651-1687),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Joseon period and the fourth-generation ancestor of Yi Man-un. The shrine was erected in 1820, the year when he died, with the decision of a group of local Confucian scholars.


  • 부조묘: shrine-in-perpetuity를 외국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설명해야 한다면 이 표현만 가지고 충분할까요?
  • is the decision of a group of local scholars needed? is this unusual?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만운(1736-1820)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이만운은 칠곡 출신으로, 문장과 덕망이 뛰어나고 천문, 지리, 역산 등에 밝았다. 그는 특히 박학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종 제도와 문물을 정리한 일종의 백과사전인 『동국문헌비고』를 증보하는 작업에 9년간 참여했다.

이 집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와 이만운의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이만운의 4대조이자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한명(1651-1687)이 1670년에 지었다. 사당은 이만운의 부조묘로, 그가 세상을 뜬 해인 1820년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