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보광사지
부여 보광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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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부여 보광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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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 普光寺址 |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 618-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98호 |
지정(등록)일 | 1995년 10월 7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수량/면적 | 14,928㎡ |
웹사이트 | "부여 보광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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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보광사지는 고려 때 성주산 기슭에 세워진 보광사의 터로, 지금은 논으로 개간되어 절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절에 관한 기록은 고려 공민왕 때인 1358년 이 곳에 세워진 대보광선사비에 잘 나와 있다. 이 비문에 따르면, 보광사는 고려 말 원명국사가 머무르면서 크게 번창하였고, 임진왜란 때 절과 비각이 모두 불타자 조선 영조 때인 1750년 절을 복구하고 다시 비를 세웠다고 한다.
보광사지 일대에서는 땅 위로 드러난 건물의 축대*, 석탑이나 석등, 기와와 자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고려~조선시대에 절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 축대 : 높이 쌓아 올린 대나 터
영문
Bogwangsa Temple Site
This is the former site of Bogwangsa Temple built at the foot of Seongjusan Mountain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Various remains were found at this site, such as foundations of the temple buildings, a stone pagoda, a stone lantern, roof tiles, and porcelain shards.
According to the Stele for Great Master Bogwang (Treasure No. 107) also found in the area, Great Master Bogwang (1274-1338, also known as State Preceptor Wonmyeong) stayed at Bogwangsa Temple beginning in 1334. To accommodate his more than 3,000 disciples, he carried out a massive reconstruction of the temple. The large temple lasted for a long time until it was burnt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영문 해설 내용
보광사지는 고려시대에 성주산 기슭에 세워졌던 보광사의 터이다. 지금은 논으로 개간되어 절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 절터에서는 건물의 축대, 석탑, 석등, 기와와 자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대보광선사비의 비문에 따르면, 보광사는 1334년 원명국사가 와서 크게 중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절과 비각이 모두 불타 1750년 절을 복구하였다고 한다. 보광사는 19세기 후반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정안
보광사지는 고려시대에 성주산 기슭에 세워졌던 보광사의 터이다. 이 절터에서는 건물의 축대, 석탑, 석등, 기와와 자기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대보광선사비(보물 제107호)의 비문에 따르면, 1334년 보광선사(1274-1338)가 이 절에 온 이후 문인들의 수가 3천여 명에 달하게 되었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후 대규모의 사찰로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참고
- 이훈학, “충청남도 기념물 제98호 부여 보광사지”, 충남일보, 2018.05.22.
-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 한국 기록유산 Encyves, 한국학중앙연구원.
- “충감”, 한국 기록유산 Encyves,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