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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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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재
Dongsanjae Ritual Houses
문화재 소개 – 칠곡 동산재”, 라이언의 일상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2019.03.23.
대표명칭 동산재
영문명칭 Dongsanjae Ritual Houses
한자 東山齋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동산1길 24-18[석전리 661]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503호
지정(등록)일 2006년 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동산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동산재는 광주이씨 석전문중의 대표적인 고건물로서 삼대(三代)의 재사가 일곽을 이루면서 건립순서와 세계가 역순이면서도 건축구조상 정연한 위치성을 가지고 있으며, 흔치 않은 ‘品’ 자형의 재사이다. 중앙상단의 낙촌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경암재와 소암재가 위치하고 있다.

낙촌정은 낙촌 이도장(1603~1644)의 휘행(徽行)과 의덕(懿德)을 기리기 위한 재사로서 1913년에 건립되었다. 공은 석담공윤우의 차자로 태어나 종숙인 주부공 영우에 입후하였다. 1630년에 대과 급제 후 이조좌랑 부응교에 이르렀으며 증직으로 곽찬성양관 대제학을 지냈다.

경암재(景巖齋)는 낙촌정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촌 이도장의 장자인 귀암 이원정(1622~1680)의 유덕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도내 유림의 뜻을 모아 1903년에 건립한 재사이다. 공의 호가 귀암이라 경모하는 뜻에서 재호를 경암재라 하였다. 공은 효종 3년(1652)에 대과 급제 이조판서를 지내고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후에 문익의 시호가 내려졌다. 담장밖에는 귀암공의 신도비가 있으며 비문은 번암 채상국(濟恭) 채제공이 찬하였다.

소암재(紹巖齋)는 낙촌정의 우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촌 이도장의 장손인 정재공 이담명의 별사봉향을 위하여 1750년에 세운 재사이다. 소암재라 현판함은 귀암공의 덕업을 소술(紹述)하였다 하여 유림에서 지은 재호이다. 재사뒤에는 한칸의 묘실(廟室)이 있다. 정재공은 인조 24년(1646)에 태어나 현종 11년(1670)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관찰사, 이조참판을 지냈다.

영문

Dongsanjae Ritual Houses

Dongsanjae refers to the three ritual houses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for three generations of the Gwangju Yi Clan: Yi Do-jang (1603-1644), his son Yi Won-jeong (1622-1680), and his grandson Yi Dam-myeong (1646-1701). It is rare to see three generations’ ritual houses established at one site.

Nakchonjeong, located in the center, is the ritual house for Yi Do-jang. On the right is Gyeongamjae for Yi Won-jeong, and on the left is Soamjae for Yi Dam-myeong.

Nakchonjeong was built in 1913 as a ritual house for Yi Do-jang. Yi Do-ja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30 and escorted the king during the Manchu invasion in 1636.

Gyeongamjae was built in 1903 as a ritual house for Yi Won-jeong. Yi Won-j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52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1680, he was falsely accused for treason and executed on his way into exile. His false accusation was removed in 1689 and he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chief state councilor. A stele recording his life and achievement stands outside the wall of Dongsanjae.

Soamjae was built in 1750 as a ritual house for Yi Dam-myeong. Yi Dam-my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70. When he was appointed as a governor of Gyeongsang-do Province in 1690, there was a severe famine and he implemented several policies to save the people. A stele honoring his wise governance was erected in Seokjeon-ri in 1708 and still stands today.

영문 해설 내용

동산재는 광주이씨 가문의 이도장(1603-1644), 이도장의 아들 이원정(1622-1680), 이원정의 아들 이담명(1646-1701) 재사들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3대의 재사 3동이 일곽을 이루는 드문 사례이다.

중앙의 낙촌정은 이도장의 재사로 1913년에 건립되었다. 이도장은 1630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왕을 호종하였다.

경암재는 이원정의 재사로 1903년에 건립되었다. 이원정은 1652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지냈다. 1680년 역모의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던 중 사형되었다. 1689년 신원되었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동산재 담 밖에 이원정의 신도비가 있다.

소암재는 이담명의 재사로 1750년에 건립되었다. 이담명은 1670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690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였을 때 극심한 흉년이 들자 백성을 구휼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쳤다. 석전리에는 이담명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708년에 세워진 비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