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각서석
부산각서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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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부산각서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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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浮山刻書石 |
주소 | 충남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 142-1 (진변리) |
지정(등록) 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47호 |
지정(등록)일 | 1976년 1월 8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석각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기/400㎡ |
웹사이트 | "부산각서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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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부산 각서석은 부산(浮山)의 백마강가 암벽에 글씨를 새긴 것으로, 조선 중기 문신인 이경여(李敬與, 1585~1657)의 의지를 후손에 알리고자 쓰여졌다.
이경여는 조선 효종 때 영의정까지 지냈는데, 1657년에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 송시열과 함께 청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북벌계획과 관련된 글을 왕에게 올렸다.
그 후 송시열이 왕의 답장 중 한 구절을 써서 이경여의 아들에게 전하였는데, 숙종 때인 1700년에 손자 이이명이 이를 암벽에 새기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워 대재각이라 하였다. 그 글귀는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으로, ‘지극히 통탄스러운데 날은 저물고 길은 멀기만 하다’는 내용이다.
이 각서석은 글씨의 필체가 힘차고 강건하여 금석문 자료로서 가치가 있 으며, 벼슬을 그만두고 초야에 내려와서도 왕과 토론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던 늙은 재상의 굳은 의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문
Rock inscription at Busan mountain
This is an inscription carved on a rock located at the foot of Busan Mountain by the bank of the Baekmagang River. The inscription was made in 1700 in the honor of Yi Gyeong-yeo (1585-1657),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Joseon.
Yi Gyeong-yeo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09 and served at various official posts. When the Manjus invaded the country in 1636 he escorted King to the refuge and when the war ended with the capitulation of Joseon, he remained opposed to Qing China for a long time. And even though he became a chief state councilor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r. 1649-1659) in 1649 he was eventually dismissed from his position due to the pressure from the Qing.
In 1657 trying to wipe off the shame of the Manju invasion he submitted a petition to the king insisting on punishing the Qing. In his response the king, although acknowledging Yi’s position as reasonable said it was already too late to act upon it.
A civil official and a scholar Song Si-yeol who together with Yi Gyeong-yeo compiled the petition, wrote down one phrase from the king’s reply and sent it to Yi’s son, Yi Min-seo (1633-1688). Later Yi’s grandson Yi Yi-myeon (1658-1722) carved this phrase on a rock and built a (protecting) pavilion around it.
- Some sources say there was only one phrase in the king’s response letter.
영문 해설 내용
부산 각서석은 백마강가 부산 기슭에 있는 바위에 새긴 글씨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경여(1585-1657)를 기리기 위해 1700년에 새긴 것이다.
이경여는 1609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피난하던 왕을 호종했고, 조선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청나라를 배척하는 입장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효종(재위 1649-1659) 때인 1649년 영의정이 되었지만, 청나라의 압력으로 파직되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1657년 이경여는 왕에게 청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에 대해 왕은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내렸다.
이경여와 상소를 함께 작성했던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송시열이 왕의 답장 중 한 구절을 써서 이경여의 아들 이민서(1633-1688)에게 전하였다. 이경여의 손자인 이이명(1658-1722)이 이를 암벽에 새기고, 바위를 보호하는 건물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