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촌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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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9월 20일 (금) 12:3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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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촌 영정
Portrait of Hwang Hui
"황방촌 영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황방촌 영정
영문명칭 Portrait of Hwang Hui
한자 黃尨村 影幀
주소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905번지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29호
지정(등록)일 1987년 4월 28일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수량/면적 1점
웹사이트 "황방촌 영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전기에 재상을 지낸 방촌 황희(尨村 黃喜, 1363∼1452)의 초상화이다. 이 초상화는 황희가 62세 되던 해의 모습으로, 오사모(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를 쓰고 쌍학흉배(한 쌍의 학을 수놓은 흉배)와 각대를 갖춘 관복 차림의 반신상이다. 콧날과 눈 주위에는 음영을 가하여 요철을 표현하였으며, 흰색과 검은색의 터럭이 섞여 있는 수염은 세밀하게 묘사된 반면 관복의 옷 주름은 비교적 강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이 초상화는 경북 상주의 옥동서원에 소장되어 온 것을 조선 헌종 때인 1844년 옮겨 그린 것인데, 모사본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 받아 황희의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바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홍여하는 황희의 초상화를 보고 ‘평소 집에 있을 때는 그저 온화하여 어린 종들이 몰려들어 수염을 잡아당기며 먹을 것을 내라고 조르기를 마치 제 부모에게 하듯 해도 내버려두지만, 관복 차림에 홀을 꽂고 묘당에 나서면 조정이 숙연하였다.’ 라는 시문(詩文)을 남겼다.

영문

Portrait of Hwang Hui

This is a portrait of Hwang Hui (1363-1452, pen name: Bangchon), a renowned prime minister of the early Joseon period.

Hwang Hui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89 and served official posts during the Goryeo dynasty (918-1392). However, when Goryeo fell and Joseon (1392-1910) was founded, he left his post and lived in seclusion. In 1394, Taejo (r. 1392-1398), the founding king of the Joseon dynasty, invited Hwang Hui back to the government. Hwang went on to serve two more kings, Taejong (r. 1400-1418) and Sejong (r. 1418-1450), in various official posts until 1449.

In the painting, Hwang is depicted at the age of 62 wearing official robes, including an official cap and belt. The rank badge on his chest depicts a pair of cranes, symbols of longevity and wisdom, which indicates his high rank.

This portrait, painted in 1844, is a copy of the original portrait in Okdongseowon Confucian Academy in Sangju, Gyeongsangbuk-do. It was designated as the national standard portrait of Hwang Hui due to its high quality in comparison to other remaining copie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의 재상이었던 황희(1363-1452, 호: 방촌)의 초상화이다.

황희는 고려시대인 1389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을 얻었으나,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둔하였다. 1394년 태조의 요청으로 조정에 나아가게 되었고, 이후로도 태종, 세종 대를 거쳐 1449년 은퇴하기까지 다양한 관직을 지냈다.

초상화 속의 황희는 62세 때의 모습으로, 오사모를 쓰고 각대를 갖춘 관복 차림이다. 흉배에 수놓은 한 쌍의 학은 장수와 지혜의 상징이며 높은 관직을 나타낸다.

이 초상화는 경북 상주의 옥동서원에 소장되어 온 것을 1844년에 모사한 것이다. 모사본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아 황희의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