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선생 유적
백장선생 유적 Historic Site Related To Baek J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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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백장선생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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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istoric Site Related To Baek Jang |
한자 | 白丈先生 遺蹟 |
주소 |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금덕리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01호 |
지정(등록)일 | 1999년 4월 23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
시대 | 고려시대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백장선생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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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 백장 선생(1342년~1415년)의 유적이다. 백장의 무덤과 신도비(왕이나 고관들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가에 세우던 비), 재실 등이 있다.
백장은 정몽주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대제학을 지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조(이성계)와 태종(이방원)이 벼슬을 내렸으나 조선 창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거절하여 장계면 삼봉리에 유배되었다.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Baek Jang
This historic site is related to Baek Jang (1342-1451), a loyal subject and Confucian scholar of the late Goryeo period. The complex includes his tomb, ritual house, and stele which records his life and achievements.
After passing a preliminary state examination in 1357, Baek Jang went to Yuan China for study. He was bestowed an official post in the Yuan court, but returned to Goryeo to serve various positions. When Goryeo fell and Joseon (1392-1910) was founded, he refused to serve the new dynasty and was exiled several times. In his later years, he stayed in the Jangsu area and dedicated himself to teaching younger scholars.
The stele was erected in 1850, and the ritual house was built in 1960.
영문 해설 내용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성리학자인 백장(1342-1415)의 유적으로 그의 묘소, 신도비, 재실 등이 있다.
백장은 135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원나라로 유학을 떠나 과거에 급제하였다. 원나라에서 그에게 관직을 내렸으나, 고려로 귀국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벼슬을 거절하여 여러 차례 유배되었다. 이후 말년에는 장수 지역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신도비는 1850년에 세워졌고, 재실은 1960년에 세워졌다.
참고
- “백장”,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