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단
정공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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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정공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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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公壇 |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 23 (좌천동, 정공단)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0호 |
지정(등록)일 | 1972년 6월 2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
수량/면적 | 2,445.86㎡ |
웹사이트 | "정공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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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정공단은 임진왜란의 첫 전투지였던 부산진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한 충장공 정발장군과 그와 함께 목숨을 바친 분들을 위해서 비석을 세워 모신 제단이다. 1766년(영조42) 당시의 부산첨사 이광국이 부산진성에서 순절한 이들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순절한 장소였던 이곳에(옛 부산진성의 남문 터) 제단을 쌓았고, 이후 부산첨사들은 부산진성이 함락된 날인 음력 4월 14일이 되면 제사를 지내왔다. 단의 중앙에는 정발장군의 비를 세우고, 서쪽에는 정발장군의 막료였던 이정헌, 동쪽에는 정발장군의 첩인 열녀 애향, 남쪽에는 여러 군민들을 모시고 있고, 남쪽 층계 밑에는 충직한 노비인 용월의 단이 마련되어 있다. 1895년 첨절제사(僉節制使) 제도가 폐지된 후에는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된 향사계에서 제사를 올렸다. 1907년 순종이 남쪽지방을 순시할 때 지방민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하사금을 내려 단을 유지하고 향사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민족혼을 일깨운다하여 제단은 폐쇄하고 유물과 비품도 몰수하였다. 광복 후 다시 향사계가 재조직되고 옛 비석을 되찾게 되었다. 1948년 제단을 새로 조성하면서 뒤쪽으로 별단을 쌓아 옛 비석을 안치하였고, 2009년 옛 비석은 땅에 묻고 제단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 사단법인 정공단보존회에서 매년 음력 4월 14일에 제향을 주관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정공단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정발(1553-1592)과 그와 함께 순절한 군민들을 기리는 제단이다.
정발은 1592년 부산진의 최고 지휘관으로 부임하였으며,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산에 침략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766년 정발과 당시 순절한 이들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옛부산성의 남문 터에 제단을 쌓았고 제단 중앙에는 정발 장군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
이후 부산성이 함락되었던 음력 4월 14일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왔다. 1907년에는 순종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지역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하사금을 내리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제단을 폐쇄하고 비석을 비롯한 유물도 몰수하였으나, 광복 후 다시 제사를 지내기 위한 모임이 조직되고 옛 비석도 되찾았다.
1948년 정공단보존회가 결성되어 현재까지 제향을 봉행하고 있으며, 2009년 옛 비석을 땅에 묻고 제단을 정비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