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정
영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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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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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慕亭 |
주소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676번지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15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4월 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영모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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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영모정은 조선 고종 때인 1869년 효자 신의련의 효행을 기리고 그를 본받기 위해 세운 누정(누각과 정자를 아울러 이름)이다. 신의련은 임진왜란 때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던 중 왜적이 쳐들어오자 아버지만은 살려 달라고 청하였다. 그의 효성에 감동한 왜장이 신의련의 이름을 종이에 써서 태우니 타지 않고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한다. 이에 놀란 왜장이 마을 밖에 ‘효자가 사는 곳’이라는 방을 세우고 왜적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이곳으로 피난하여 살아남은 사람이 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영모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2층 누정 건축으로 지붕은 얇은 돌조각을 기와처럼 이은 돌 너와를 사용하였다. 정자 아랫부분 네 기둥에는 거북 머리 모양의 둥근 받침돌을 사용하고 있다. 영모정 주변에는 미계 신의련(美溪 愼義蓮) 유적비와 효자각 등 관련 유적이 모여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1869년 신의련(1546-?)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진안 출신의 신의련은 임진왜란 때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왜적이 쳐들어왔고, 신의련은 아버지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의 효성에 감동한 왜장은 종이에 신의련의 이름을 써서 불을 붙였고, 신기하게도 종이가 불에 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왜장은 마을 밖에 ‘효자가 사는 곳’이라는 표시를 남겼으며, 덕분에 이 마을은 왜적의 침입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모정은 지붕에 얇은 돌조각을 기와처럼 이은 돌 너와를 사용하였다. 정자의 네 기둥 아래에는 거북 머리 모양의 둥근 받침돌을 사용하였다. 이 마을에는 신의련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과 효자각이 있다.
참고
- “신의련”, 디지털진안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미계 신의련 유적비”, 디지털진안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신의련”, 한국문집총간 편목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