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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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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암지
대표명칭 존자암지
한자 尊者庵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산1-1번지
지정(등록) 종목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1995년 7월 13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0,800㎡
웹사이트 존자암지,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존자암은 국성재*를 봉행한 호국도량(護國道場)으로, 도내에서 유일하게 국가 제례가 열렸던 사찰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위상이 각별하다. 발굴 조사와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보아 14세기 후반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연산군 때 제주에 유배되어 온 홍유손(洪裕孫, 1431-1529)이 중종 2년(1507)에 남긴 글에는 “존자암은 제주도의 세 성씨인 고(高)·양(梁)·부(夫)가 처음 일어날 때 창건되어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이 정립된 이후까지 오랫동안 전해진 비보소*”라고 하였다. 또한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존자암은 한라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그 골짜기에 마치 승려가 도를 닦는 모습과 같은 돌이 있어서 속설에 전하기를 수행동(修行洞)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존자암지에서는 건물지 5개소와 배수 시설이 발견되었고, 청자편·백자편·기와편·청동신중상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절터 내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유형 문화유산인 존자암지 세존사리탑이 있는데, 이는 현무암과 화산송이석으로 만든 제주도 유일의 석조 사리탑으로 가치가 높다.

존자암지 복원 사업은 1998년부터 추진되어 대웅전·국성재각·누각 등이 순차적으로 복원되었다.


  • 국성재(國聖齋): 나라에서 하사한 비용으로 제수를 마련하고, 매년 음력 4월에 제주 삼읍의 수령 중 한 사람이 목욕재계한 후 올리던 국가 제사를 말한다.
    • 비보소(裨補所): 땅의 기운을 보완하여 지역을 평안하게 한다는 곳을 말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존자암은 14세기 후반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제사를 지냈던 호국도량이며, 제주도 내에서 유일하게 국가 제례가 열렸던 사찰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위상이 각별하다. 당시 나라에서 하사한 비용으로 제수를 마련하고, 매년 음력 4월에 제주 수령 중 한 사람이 목욕재계한 후 제사를 올렸다.

학자 홍유손(1431-1529)이 1498년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에 풀려났는데, 이듬해에 그가 남긴 글에 따르면 존자암은 제주도의 세 성씨인 고(高)·양(梁)·부(夫)가 처음 일어날 때 창건되었으며, 오랫동안 땅의 기운을 보완하여 지역을 평안하게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또한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존자암은 한라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그 골짜기에 마치 승려가 도를 닦는 모습과 같은 돌이 있어서 속설에 전하기를 수행동(修行洞)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존자암지에서는 건물지 5개소와 배수 시설이 발견되었고, 청자편·백자편·기와편·청동신중상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절터 내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인 존자암지 세존사리탑이 있는데, 이는 현무암과 화산송이석으로 만든 제주도 유일의 석조 사리탑으로 가치가 높다. 존자암지 복원 사업은 1998년부터 추진되어 대웅전·국성재각·누각 등이 순차적으로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