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영주 봉서루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6년 4월 21일 (화) 15:15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 |사진출처= |대표명칭=봉서루 |영문명칭= |한자=鳳棲樓 |주소= |소장처= |지정번호= |지정일= |분류= |소유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봉서루
대표명칭 봉서루
한자 鳳棲樓



해설문

국문

봉서루는 고려 시대에 세운 누각으로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이루어진 2층 건물이다. 낡은 건물을 1824년에 다시 지으면서 현재의 순흥면 행정 복지 센터 자리를 거쳐 2007년에 원래의 자리로 다시 옮겼다.

봉서루는 순흥 남쪽에 있어 고을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던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순흥에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나타나 이곳은 좋은 땅이지만 앞이 비어 있어 봉황이 남쪽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흥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해결책을 묻자 봉황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남쪽에 큰 누각을 짓고 오동나무와 봉황의 알을 두라고 조언하였다. 이에 봉서루를 짓고 그 주위에 오동나무를 심은 뒤 흙을 쌓아 봉황의 알 3개를 만들었다. 그러자 고을이 곧 번성하였다고 한다.

누각 바깥쪽 앞에는 ‘봉서루(鳳棲樓)’라고 쓴 현판이, 뒤에는 ‘영봉루(迎鳳樓)’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봉서루는 ‘봉황이 깃들어 사는 누각’을, 영봉루는 ‘봉황을 맞이하는 누각’을 뜻한다. 현재 두 현판은 소수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누각 안쪽에는 안축(安軸)이 쓴 「순흥봉서루중영기(順興鳳棲樓重營記)」와 서성렬(徐成烈)이 쓴 「봉서루중건상량문(鳳棲樓重建上梁文)」, 김휘종(金輝鍾)이 쓴 「봉서루중수상량문(鳳棲樓重修上梁文)」, 송홍준(宋鴻俊)이 쓴 「봉서루복원기(鳳棲樓復元記)」가 걸려 있다.

안축이 쓴 「순흥봉서루중영기」에는 “낡은 누각을 다시 세우니 영남에 있는 누대(樓臺) 가운데 이와 아름다움을 견줄 것이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 봉서루의 뛰어난 건축미를 알 수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