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무학대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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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대사비 |
|
| 대표명칭 | 무학대사비 |
|---|---|
| 한자 | 無學大師碑 |
| 주소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번지 |
| 지정(등록) 종목 |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1974년 9월 26일 |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 소유자 | 회암사 |
| 관리자 | 양주시 |
| 시대 | 조선시대 |
| 수량/면적 | 1기 |
| 웹사이트 | 무학대사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조선 초 태조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의 행적을 담은 비로, 그의 생애와 업적·중건비를 세우게 된 경위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태조는 조선 개국은 물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는데 큰 역할을 한 무학대사를 왕사로 책봉하고, 묘엄존자(妙嚴尊者)라는 칭호를 내렸다. 비문은 조선 태종 10년(1410)에 왕명에 따라 변계량(卞季良)이 글을 짓고, 공부(孔俯)의 글씨로 세워졌으나 1821년(순조21)에 비가 인위적으로 파괴됨에 따라 1828년(순조28)에 다시 세워졌다. 비의 형태는 낮은 지대석 위에 모서리를 둥글게 한 높직한 사각 받침을 놓고 흑청 석재의 비신을 세웠으며, 팔작지붕이 그 위에 놓여 있다. 비의 총 높이는 340cm이며, 비석은 높이 223cm, 폭 89.5cm, 두께 28.5cm이다. 현재의 비 우측에 최초의 비석에 사용되었던 석재를 사각 받침석 위에 연꽃잎 형태의 지붕을 올려 보존하고 있는데 비신은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