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오성산성
| 화순오성산성 Oseongsanseong Fortress, Hwas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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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화순오성산성 |
|---|---|
| 영문명칭 | Oseongsanseong Fortress, Hwasun |
| 한자 | 和順烏城山城 |
|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서성리, 백용리, 화순읍 일심리 일대 |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남도 기념물 |
| 지정(등록)일 | 2001년 12월 13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 수량/면적 | 8필지 350,451㎡ |
| 웹사이트 | 화순 오성산성,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오성산성은 화순 동면과 화순읍 일대에 펼쳐져 있는 오성산(290.4m)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테뫼식 산성(산 정산 부근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성)이다. 성벽은 능선이나 절벽을 이용하고 있는데 산성의 전체 길이는 약 675m이다. 해발 250~275m 일대에 위치하고, 대부분 주변의 돌을 가공하여 축조하였다.
성벽 기단석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구체적인 축조 시기나 축조 배경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정확한 산성의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화순읍에서 가까운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유사시에 즉시 입성하여 방어나 역습을 할 수 있는 전형적인 배후산성으로 판단된다.
또한 정유재란 당시에는 의병장 최경운과 화순향민 200여 명이 왜병 3,000여 명과 3일 동안 전투를 벌인 격전지이기도 하다. 성내에 산재한 유물로 보아 조선 시대에 축조되어 활용되다가 폐기된 화순현 관련 산성으로 추정된다.
영문
Oseongsanseong Fortress, Hwasun
Oseongsanseong Fortress was built along the upper slopes of Oseongsan Mountain (290.4 m above sea level), encircling elevations of approximately 250-275 m. Although no historical records survive regarding its exact date of construction or original purpose,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fortress occupies a strategic location close to Hwasun-eup, suggesting it was intended as a place where troops could rapidly assemble in times of emergency to defend against attacks or launch counterattack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 the fortress became the site of a fierce battle. Righteous army leader Choe Gyeong-un (?-1597) and approximately 200 local residents of Hwasun fought some 3,000 Japanese troops for three days.
The fortress has a total length of about 675 m. Its walls make full use of the surrounding natural terrain, including ridgelines and cliffs, and were built primarily from locally sourced stone. Large stones were used for the foundation, while progressively smaller stones were laid toward the upper sections of the walls.
영문 해설 내용
오성산성은 오성산(해발 290.4m)의 정상부인 해발 250-275m 부근에 둘러쌓은 산성이다. 구체적인 축조 시기나 축조 배경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순읍에서 가까운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유사시에 즉시 입성하여 방어나 역습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에는 의병장 최경운(?-1597)과 화순 향민 200여 명이 왜병 3,000여 명과 3일 동안 전투를 벌인 격전지이기도 하다.
이 산성의 전체 길이는 약 675m로, 능선과 절벽 등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였으며, 대부분 주변의 돌을 가공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 기단석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