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예림서원
| 밀양 예림서원 |
|
| 대표명칭 | 밀양 예림서원 |
|---|---|
| 한자 | 密陽 禮林書院 |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예림서원로 128 (후사포리) |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1974년 2월 16일 |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 수량/면적 | 1동 |
| 웹사이트 | 밀양 예림서원,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예림서원(禮林書院)은 조선시대 사림의 종장(宗匠)인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1431~1492) 선생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1567년(명종22) 밀양 부사 이경우(李慶祐)가 세웠다.
서원(書院)은 선현의 가르침을 본받기 위해 향사를 올리고 선비를 양성하던 조선시대의 사립학교이다.
예림서원의 처음 이름은 덕성서원(德城書院)이었으나 1637년 부남면 운례리(예림리)로 옮기면서 예림서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오졸재 박한주(迃拙齋 朴漢柱, 1459~1504)와 송계 신계성(松溪 申季誠, 1499~1562) 선생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669년(현종10)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면서 나라의 지원을 받았고, 1680년(숙종6) 화재로 전소되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1871년(고종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74년(고종11)부터 건물이 하나씩 복구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서원의 건물 배치는 교육영역을 앞에, 제향 영역을 뒤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에 따라 강당인 구영당(求盈堂)이 앞에 있고, 사당인 육덕사(育德祠)가 뒤에 있다. 독서루(讀書樓) 아래 삼문은 정문이고, 위층 누각은 유생들이 독서와 토론을 하며 쉬는 곳이다. 돈선재(敦善齋)와 직방재(直方齋)는 기숙사이며, 열고각(閱古閣)은 김종직 선생의 문집을 간행하려고 만든 책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영문
A Confucian academy, called seowon in Korean, is a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at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예림서원은 학자이자 문신인 김종직(1431-1492)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1567년 밀양부사 이경우가 덕성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세웠다. 1637년 서원을 예림리로 옮기면서 이름을 예림서원으로 바꾸었고, 이때 박한주(1459-1504)와 신계성(1499-1562)을 추가로 모셨다.
김종직은 조선 전기에 성리학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절의와 도덕적 원칙을 중시하며 이를 실천하였다. 또한 많은 제자를 길러내어 조선 시대 사림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다. 박한주는 밀양 출신의 문신으로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신계성은 밀양 출신의 학자로 평생 학문 연구에 힘썼다.
예림서원은 1669년 사액을 받았으나, 1680년 화재로 전소된 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다시 지어졌다.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74년부터 건물이 하나씩 복구되었다.
이 서원은 앞에서부터 정문, 강당, 기숙사인 동서재, 목판각인 열고각, 내삼문,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인 독서루는 누각 형태로, 아래층은 출입 공간으로, 위층은 유생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며 휴식을 취하던 공간으로 쓰였다. 열고각은 김종직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책판을 보관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