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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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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선생묘
대표명칭 김균선생묘
한자 金稛先生墓
주소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산89-1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기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1987년 2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김균선생 묘,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김균(金稛) 선생(?~139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공역승(供驛丞) 김남미(金南美)의 현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지문하부사(知門下府使)를 지낸 김지윤(金智允)이다. 증조부는 예빈경(禮賓卿) 김수(金粹), 조부는 예의판서(禮儀判書) 김기연(金起淵)이며, 장인은 개국원종공신 밀직부사 권현(權鉉)으로 고려관직은 판도판서(版圖判書)이다.

공은 고려 공민왕 9년(1360)에 성균시에 합격하고 공양왕 4년(1392) 7월 17일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낼 때 익안대군(益安大君) 등 39인과 함께 이성계를 조선 태조로 추대하여 송경(松京) 수창궁(壽昌宮)에서 즉위식을 거행케 함으로써 개국공신 3등 15인 중 제2인으로 책훈(策勳)되어 순충분의좌명(純忠奮義佐命) 개국공신 보국숭록대부좌찬성(輔國崇祿大夫左贊成)까지 올랐으며, 이 때 태조를 추대한 공으로 개국공신 3등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가자(加資)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의 공신호를 받았으며,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다. 벼슬이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다.

사후 제숙(齊肅)의 시호가 내렸으며 그 공훈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불천지위(不遷之位)로 향사(享祀)되었다. 사당은 백세불천지묘(百世不遷之廟)로 되었다.

묘소는 이곳 경기도 광주시 능평동 산89-1에 위치하며 격식을 갖춘 공신묘로서 장방형 묘에 곡장(曲墻)이 둘러져 있다. 신도비는 순국열사 문충공(文忠公) 송병선(宋秉璿)이 찬(撰)하고 공의 20세 종손 애국지사 김인식(金仁植)이 광무 9년(1905)에 건립한 것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김균(?-1398)의 묘이다.

김균은 고려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었다. 한국의 유교 전통에서는 원칙적으로 사당에 4대 조상까지만 위패를 모실 수 있지만, 특별한 공훈이나 덕행이 있는 인물은 그 위패를 대대로 옮기지 않고 영구히 모실 수 있다. 김균 역시 이러한 특별한 예우를 받아 후손들이 그의 위패를 계속 제향해 왔다.

김균의 묘소는 공신의 위계에 걸맞게 조성되었으며, 장방형 봉분을 곡장(曲墻)이 둘러싸고 있다. 봉분 앞에는 1888년에 세워진 묘표를 비롯해 석상, 향로석, 석양, 망주석, 무인석 등 다양한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묘역 입구에는 1905년에 세워진 신도비가 있으며, 이는 김균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20대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인식이 세운 것이다. 비문의 글은 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송병선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