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칠곡 가산산성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5년 12월 7일 (일) 15:29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칠곡 가산산성
Gasansanseong Fortress, Chilgok
대표명칭 칠곡 가산산성
영문명칭 Gasansanseong Fortress, Chilgok
한자 漆谷 架山山城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번지
지정(등록) 종목 사적
지정(등록)일 1971년 3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006,171㎡
웹사이트 칠곡 가산산성,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1640년(인조 18) 이명웅이 장정 10여만명을 동원해 초축했다. 그 후 1651년(효종 2) 관찰사 이만과 이지형이 중수 했고, 1701년(숙종 27) 관찰사 이세재가 외성을 추가로 쌓았으며, 1741년(영조 17) 관찰사 정익하가 내성 가운데에 중성벽을 막아 최종적으로 삼중 형태의 성이 되었다.

성주목 속현인 이곳 팔거현은 초축 후 칠곡도호부로 승격되고, 성내에 읍치를 두었으며, 의성·군위·의흥·신녕·하양·경산지역을 진관으로 두었다.

가산산성의 둘레는 11.1㎞, 면적은 2.2㎢로 대규모 산성에 속한다. 험한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성벽을 따라가면 성문・암문・수문・치성・포루등 100여개의 시설이 잔존하며, 관아・군영・창고・사찰・마을유적이 성내 곳곳에 남아 있다. 또한 가암・삼층암・외성 암괴류・복수초 군락지 등 다양한 자연유산이 산성과 잘 어우러져 있다.

1895년 폐성 후로 일제강점기와 1950년 6.25전쟁 그리고 1954년 대홍수를 겪으면서 산성의 많은 건물이 사라졌고, 계곡부의 성벽이 유실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1977년부터 남문, 동문, 중성문 등 성문 일대의 보수와 복원이 이루어졌으며, 2013년『가산산성 종합정비계획』을 수립,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가산산성 복원사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가산산성은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산성이다. 1640년 10만 여 명이 동원되어 처음 지어졌고, 1651년 중수되었다. 1701년에는 본성의 남동쪽에 외성이 추가로 지어졌고, 1741년 본성 가운데에 벽을 쌓아 본성, 중성, 외성의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1895년 조선의 군제가 개편되면서 이 산성도 폐성되었고, 이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1954년 대홍수를 겪으면서 산성의 많은 건물이 사라지고 성벽이 유실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77년부터 남문, 동문, 중성문 등 성문 일대의 보수와 복원이 이루어졌으며, 2013년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가산산성 복원사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가산산성의 둘레는 11.1 ㎞, 면적은 2.2 ㎢로 대규모 산성에 속한다. 험한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성벽을 따라가면 성문, 암문, 수문, 치성, 포루 등 100여 개의 시설이 잔존하며, 관아, 군영, 창고, 사찰, 마을유적이 성내 곳곳에 남아 있다. 또한 가암, 삼층암, 복수초 군락지 등 다양한 자연유산이 산성과 잘 어우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