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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청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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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5년 11월 22일 (토) 22:2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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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사
대표명칭 청풍사
한자 淸風祠
주소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264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1984년 5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청풍사,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청풍사는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길재(吉再)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길재는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학에 힘썼다. 이색, 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렸다. 이 사당은 길재의 본관이었던 해평 길씨(海平 吉氏)의 문중 사당으로, 진영(眞影)과 위패를 봉안하고 해마다 제향을 모시고 있다.

길재가 시묘살이를 하였던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현종 12년(1671) 후손과 고을의 선비들이 함께 불이사를 처음 지어 숙종 4년(1678)에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영조 17년(1741) 서원 남설 금령에 어긋나 훼철되었다. 이후 영조 37년(1761)에 금산 군수 민백흥과 지방 유림이 ‘백세청풍(百世淸風)’ 4대자를 새긴 비를 청풍사가 있던 터에 세웠다. 이후 1804년 다시 사당을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청풍사는 다시 철폐되었다. 이후 1928년에 청풍비각을 창건하면서 청풍사를 중수하였고, 1976년과 1979년에 각각 보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경내에는 사우와 신문(神門), 강당, 비각(碑閣) 등이 있다. 사우에는 길재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청풍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인 길재(1353-1419, 호: 야은)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길재는 1386년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1337-1392, 호: 포은), 이색(1328-1396, 호: 목은)과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리는데, 이는 세 사람의 호가 모두 ‘숨다’라는 뜻의 ‘은(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1671년 해평길씨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이 길재를 기리는 사당을 불이리에 처음 세웠고, 1678년에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이 사당은 1741년에 훼철되었고, 1761년 금산 군수 민백흥과 지역 유림들이 사당이 있던 자리에 길재를 기리기 위한 비석을 세웠다. 1804년 사당을 다시 세웠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다시 훼철되었다. 지금의 사당은 1928년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1976년과 1979년에 각각 보수하였다.

사당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길재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경내에는 사당 외에도 정문, 강당, 비각 등이 있다. 비각에는 붉은 글씨로 “백세청풍”이라고 쓴 비석이 있는데, 이는 “중국 상나라의 충신인 백이와 숙제의 충절이 백세에 영원하다”는 뜻이며, 길재의 절개를 영원히 기리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