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묵정영당
| 청주 묵정영당 Mukjeongyeongdang Shrine, Ch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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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묵정영당,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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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청주 묵정영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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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Mukjeongyeongdang Shrine, Cheongju |
| 한자 | 淸原 墨井影堂 |
|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길 71-29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1981년 12월 26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 수량/면적 | 1동 |
| 웹사이트 | 청주 묵정영당,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2023
이 곳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향사하고 있다. 1888년(고종25)에 처음 세웠고, 1984년과 1989년에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다. 이곳에 봉안한 영정은 보물 제613호로 지정된 가덕면 인차리의 구봉영당의 영정을 모사한 것으로 정범조(1723~1801)가 지은 영정에 대한 글이 있다.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이며 본관은 고령이다. 1439년(세종21)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자가 되었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많았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때에 수양대군(세조)을 도왔고, 세종으로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데 헌신하였다. 네 차례의 공신호와 고령부원군에 봉해지고,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2025
영당은 가문이나 지역 유림이 특정한 인물의 초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청주 묵정영당은 조선 초기에 정치와 학문 분야에서 활약한 신숙주(申叔舟)의 초상을 모신 사당이다.
신숙주는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이다. 세종 21년(1439)에 과거에 급제한 뒤, 주로 집현전 학사로 활동했으며 훈민정음 창제를 도왔다. 그리고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가담하였고 여러 차례 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묵정영당은 순조 30년(1830)에 처음 지어졌고, 고종 25년(1888)에 고쳐 지어졌다. 지금의 모습은 1971년에 갖추어진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목조 기와집이며, 옆면이 사람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건물 앞에 문을 세우고 그 주위를 담장으로 둘렀다. 영당은 중앙에 감실*을 단독으로 두고, 좌우에 복도가 설치된 특이한 구조이다. 내부에는 두 개의 높은 기둥이 서 있으며, 다섯 개의 대들보를 나란히 두었다.
이곳에 모셔진 신숙주의 초상은 영조 때 구봉영당(九峰影堂)에 있던 원본을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다. 이 초상은 본뜬 것이기는 하지만 조선 전기 공신의 모습을 잘 따르고 있으며, 정교하고 치밀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 감실(龕室): 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공간.
영문
Mukjeongyeongdang Shrine, Cheongju
2023
This shrine features a portrait of Sin Suk-ju (1417-1475), a minister and scholar in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portrait is a reproduction of the original Portrait of Sin Suk-ju (Treasure No. 613) stored in Gubongyeongdang Shrine, also in Cheongju. This shrine was built in 1888 to house the reproduced portrait. Sin helped in the stabilization of the Joseon Dynasty court during its early foundation period.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and participated in the creation of Hangeul, the Korean alphabet. He was given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four times and also served as the prime minister. The shrine was repaired in 1984 and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