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충렬문
사세충렬문 Pavilion for Commemorative Plaques of Kim Yeo-mul’s Fami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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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사세충렬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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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Pavilion for Commemorative Plaques of Kim Yeo-mul’s Family |
한자 | 四世忠烈門 |
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151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8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9월 1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일곽 |
웹사이트 | "사세충렬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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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정문(旌門)이란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을 말한다. 사세충렬문은 임진왜란 당시에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 장군과 함께 왜적을 막아내다 전사한 김여물(金汝岉, 1548~1592)의 애국 충정과, 병자호란 때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김여물의 후실인 평산 신씨(平山 申氏), 김여물의 아들 김류의 처 진주 류씨(晉州 柳氏), 김여물의 손자 김경징의 처 고령 박씨(高靈 朴氏), 김여물의 증손자 김진표의 처 진주 정씨(晋州 鄭氏)의 절개를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내려 준 정문이다.
현재 건물 안은 2칸으로 나뉘어 있는데, 오른쪽 칸에는 김여물의 충신 정문이 있고, 왼쪽 칸에 4대 열녀의 정문이 있다. 현재 건물은 1979년에 고쳐 지은 것이며,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면서 다시 건물을 보수하였다.
영문
This pavilion was constructed to house commemorative plaques honoring Kim Yeo-mul (1548-1592),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and four virtuous ladies of his family.
When the Japanese invaded Joseon in 1592, Kim Yeo-mul fought against the invaders in the Chungju area and was killed in action. A commemorative plaque was bestowed by the government in honor of his loyal devotion, and it is now housed in the right section of this pavilion. His tomb and stele are located behind the pavilion.
The four commemorative plaques in the left section of the pavilion are for Kim Yeo-mul’s wife Lady Sin, daughter-in-law Lady Ryu, granddaughter-in-law Lady Park, and great-granddaughter-in-law Lady Jeong. During the Manchu invasions of 1636-1637, they took refuge in Ganghwado Island and committed suicide to preserve their chastity.
These commemorative plaques were intended to be hung on gates, but are currently stored in this pavilion for preservation. The pavilion was reconstructed in 1979. The wooden plaque hung on this building reads “Sasechungnyeolmun (四世忠烈門),” meaning “commemorative gates of four generation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여물(1548-1592)과 그 집안의 여인들을 기리는 정려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김여물은 임진왜란 당시 충주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가 내려졌으며, 현재 이 건물의 오른쪽 칸에 있다. 건물 뒤편에는 김여물의 묘와 신도비가 세워져있다.
정문 왼쪽 칸에 있는 4개의 정려는 김여물의 후실인 평산신씨, 자부 진주류씨, 손부 고령박씨, 증손부 진주정씨를 기리는 것이다. 이들은 병자호란 때 피난을 갔다가 강화도 앞바다에 몸을 던져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원래 이러한 정려들은 문의 형태로 만들어 세우기도 했고, 지금은 보존을 위해 이 건물 안에 보관되어 있다. 이 건물은 1979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정면에 걸린 현판에는 “사세충렬문(四世忠烈門)”이라고 쓰여 있으며, “4대에 걸친 정려문”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