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진해 보태가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5년 10월 3일 (금) 12:40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진해 근대역사문화공간

진해 보태가
대표명칭 진해 보태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 89 (충무동 8-3)
지정(등록) 종목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등록)일 2021년 11월 04일
분류 등록문화유산 / 기타 / 공공용시설
수량/면적 지상2층 1동, 연면적 249.19㎡
웹사이트 진해 보태가,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진해 근대역사문화공간[1]

해설문

국문

보태가는 목조 상가 건물로, 주거와 상업 기능을 함께 지닌 ‘간판 건축’ 유형에 속한다. ‘간판 건축’이란, 건물 정면에 평평한 벽을 세우고 그 위에 다양한 창호와 장식을 덧붙여 간판처럼 보이도록 한 것으로 일본 건축에서 사용하는 명칭이다.

‘보태가’는 시민 공모를 통해 결정된 이름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자리를 지켜 왔던 ‘보민의원(寶民醫院)’과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태화여관’의 앞 글자를 합쳐 만든 이름으로, 경상도 방언으로 ‘함께 힘을 보태가 동네를 살리자’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건물의 1층은 오랫동안 보민의원이라는 지역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2층은 다다미로 구성된 일본식 주택 관사로 쓰였으나, 진해 구도심이 쇠퇴하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 ‘진해 충무지구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2019년 시민 참여 형태의 새 단장 사업이 시작되었고, 2020년 가을에 공사를 마쳤다.

건물 전면은 흰색 모르타르 마감과 이중 새시 목조 창호로 꾸며져 있어 서양의 신고전주의 건축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식 벽돌쌓기와 프랑스식 항화석(抗火石) 벽돌쌓기를 함께 사용하여 1층 내부 벽체를 만들고, 목조 구조로 내외부 벽체와 지붕을 마감하였다. 보통의 일식 목조 건물과 달리 건물 전면은 불연성인 모르타르와 벽돌로 쌓았는데 진해 원도심이 도시 계획상 방화 지구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방화 대책의 하나로 해석된다.

건물 2층에 사용된 목재에는 일본 고치현산(産) 삼나무라는 생산지 표기가 남아 있으며, 그밖에 석탄 벽돌, 점토 줄눈 등의 자재가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건물이 세워진 시기가 근대 진해의 도시 조성 시기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수차례 고치고 더해 건물의 원래 형태는 상당 부분 달라졌지만, 근대 도시 초기의 목골 조적조 건축의 전형을 보여 주어 학술적 가치가 높은 근대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창원시는 이 건물을 매입하여 도시재생 거점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2019년 3월 경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와 학생, 지역 시민과 주요 기관들이 4개월 동안 시민 참여 디자인 기법을 통해 현장 측량과 기획 설계를 진행하였고, 6개의 제안서 중 1개를 채택하여 리노베이션* 실시 설계를 추진하였다. 보태가는 지역사회와 대학이 함께 참여해 청년 창업을 위한 베이커리 스튜디오, 스타트업 공간, 주민 사랑방 등 다양한 활용 방안까지 발굴한 시민이 참여하여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 리노베이션: 낡거나 헌 물건 따위의 일부분을 고쳐 새롭게 함. 또는 그렇게 하는 것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주거 기능과 상업 기능을 함께 지닌 일본식 목조 건물로 1940년대에 지어졌다. 1층은 진해 지역의 첫 외과병원인 보민의원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2층은 다다미로 구성된 일본식 주택 관사로 쓰였다. 병원은 진해 구도심이 쇠퇴하면서 문을 닫았고, 2018년 창원시가 이 건물을 매입하였다. 2019년 ‘진해 충무지구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리노베이션 사업이 시작되었고, 2020년 가을에 공사를 마쳤다. 지역사회와 대학이 함께 참여해 청년 창업을 위한 베이커리 스튜디오, 스타트업 공간, 주민 사랑방 등 다양한 활용 방안까지 발굴한 근대 건축물 활용 사례로 평가된다.

리노베이션 완공 후 시민 공모를 통해 “보태가”라는 이름이 결정되었다. 보민의원과 이 건물 옆에 있던 태화여관의 앞 글자를 합쳐 만든 이름이며, “함께 힘을 보태 동네를 살리는 집”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건물 앞면은 흰색 모르타르 마감과 이중 새시 목조 창호로 꾸며져 있어 서양의 신고전주의 건축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식 벽돌쌓기와 프랑스식 항화석 벽돌쌓기를 함께 사용하여 1층 내부 벽체를 만들었고, 목조 구조로 내외부 벽체와 지붕을 마감하였다. 보통의 일식 목조 건물과 달리 건물 전면은 불연성인 모르타르와 벽돌로 쌓았다. 이는 진해 원도심이 도시 계획상 방화 지구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에 방화 대책의 하나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건물 2층에 사용된 목재에는 일본 고치현산(産) 삼나무라는 생산지 표기가 남아 있으며, 그밖에 석탄 벽돌, 점토 줄눈 등의 자재가 사용되었다. 최초 건립 이후 여러 차례 고쳐지면서 건물의 원래 형태는 상당 부분 달라졌지만, 20세기 도시 초기의 목골 조적조 건축의 전형을 보여 주어 학술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참고자료

주석

  1. 진해 근대역사문화공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44138082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