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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여씨 하회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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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5년 10월 1일 (수) 20:25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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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여씨 하회댁
대표명칭 성산여씨 하회댁
한자 星山呂氏 河回宅
주소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27-1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00년 9월 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1870)
수량/면적 1곽
웹사이트 성산여씨하회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성산여씨하회댁은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있는 목조 건축물이다. 처음에는 조선 후기에 성산 여씨 15세손인 여명주(呂命周)가 60여 칸 규모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1870년의 농민 항쟁과 1936년의 수해로 대부분이 사라졌으며, 현재 남아 있는 ‘ㄷ’ 자 모양의 정침*과 사당*, 대문채* 등은 그 후에 고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이 건축물은 김천 지역의 독립운동가인 여환옥(呂煥玉)이 태어난 곳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는 1920년대에 개인 재산으로 광명학숙(光明學塾)을 세워 청소년 교육에 힘썼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김천 지회장을 맡아 일제의 식민 지배에 반대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 정침(正寢): 제사를 지내거나 일을 보는 몸채의 방.
  • 사당(祠堂):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집.
  • 대문채(大門채): 대문이 있는 집채.

영문

Hahoedaek House of the Seongsan Yeo Clan

This house is said to have been founded by Yeo Myeong-ju (1681-?) of the Seongsan Yeo clan. Originally larger in size, much of the complex was lost or destroyed during the Peasants' Uprising of 1870 and a flood in 1936. The current buildings, which include a gate quarters, a U-shaped main quarters, and an ancestral shrine, are thought to have be reconstructed at a later point.

This house is also the birthplace of Yeo Hwan-ok (1896-1963), a local independence activis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In the 1920s, he invested his own personal assets to establish Gwangmyeong Boarding School and devoted himself to teaching youth. In 1927, he became the head of the Gimcheon Branch of the United Front for Independence, standing in opposition against colonial rule.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성산여씨 가문의 여명주(1681-?)가 지었다고 전한다. 원래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컸지만, 1870년의 농민 항쟁과 1936년의 수해로 대부분이 소실되거나 붕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ㄷ’ 자 모양의 정침, 사당, 대문채 등은 그 후에 고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이 건축물은 김천 지역의 독립운동가인 여환옥(1896-1963)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는 1920년대에 개인 재산으로 광명학숙을 세워 청소년 교육에 힘썼다. 1927년에는 신간회 김천 지회장을 맡아 일제의 식민 지배에 반대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