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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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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읍성
대표명칭 광양읍성
한자 光陽邑城



해설문

국문

광양읍성은 조선 시대에 만든 읍성으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성곽을 쌓고 성안에 관아를 두어 군사적·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415년 기록에 따르면, 성이 좁고 나무를 세운 뒤 진흙을 바른 구조여서 이미 기울고 무너졌다고 한다. 또한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광양 석성의 둘레가 326보로 기록되어 있어, 이 무렵 토성에서 석성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는 성곽이 둘레 985척, 높이 14척으로 확장되었으며, 옹성 3곳, 치성 4곳, 해자와 여장 518개를 갖춘 전형적인 읍성 구조를 이루었다. 이로써 광양읍성은 광양 지역의 행정·군사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성안에는 객사와 동헌을 비롯해 작청, 통인청, 사령창, 군기, 선우청, 향청, 본창, 진창, 옥사 등 지방 행정 및 군사 시설이 있었으며, 동문·서문·남문이 설치되었다. 성내 도로망은 객사와 동헌, 성문을 잇는 중심로를 따라 형성되었으며 T자형 구조를 보인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통치와 경제적 수탈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읍성 공간 구조가 의도적으로 훼손되었다. 이후 도시화와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읍성의 옛 구조는 대부분 변형되거나 사라졌다.

영문

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location in an area to protect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영문 해설 내용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광양읍성은 조선시대 초기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415년 기록에 따르면, 성이 좁고 나무를 세운 뒤 진흙을 바른 구조여서 이미 기울고 무너졌다고 한다.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광양 석성의 둘레가 326보로 기록되어 있어, 이 무렵 토성에서 석성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광양읍성은 조선 후기에 크게 확장되었으며, 옹성 3곳, 치성 4곳, 해자와 여장 518개를 갖춘 전형적인 읍성 구조를 이루었다.

광양읍성에는 동문·서문·남문이 설치되었고, 성 안에는 객사, 동헌, 옥사 등을 비롯하여, 지방 관리들의 업무 공간과 수령을 자문·보좌하던 지역 양반들의 자치 기구 등이 있었다. 성 안의 도로망은 객사와 동헌, 성문을 잇는 중심로를 따라 형성되었으며 T자형 구조를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식민 통치와 경제적 수탈을 목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읍성 공간 구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였다. 광양읍성 역시 이때 훼손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도시화와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변형되거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