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충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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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5년 6월 2일 (월) 08:3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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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사
Chunguisa Shrine
대표명칭 충의사
영문명칭 Chunguisa Shrine
한자 忠義祠
지정(등록) 종목 광명시 향토유산



해설문

국문

충의사는 400여 년 전 충의공 장응기(忠義公 張應麒,?~1593)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용맹하게 싸운 공을 인정받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3등에 책봉된 후 그의 아들 장준이 쇠머리마을(철산동)에 위패를 배향한 곳 이다.

충의사는 덕수장씨 4대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자, 왕재산 자락에 자리한 재실(齋室)이기도 했으며, 마을을 지키는 제당(祭堂)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충의사는 광명시의 개발 이전에는 왕재산 옆 철산주공 12단지 옆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사진 자료만 남아있고, 개발 이후 현재의 터로 이전되어 현존하고 있다, 도시개발에 따른 문화유산의 변화와 적응 실태를 고찰할 수 있는 학술적 의미가 크다는 것이 특징이다.

영문

Chunguisa Shrine

Chunguisa Shrine was founded to honor Jang Eung-gi (?-1593), who fought bravely at Haengjusanseong Fortress under the command of the general Gwon Yul (1537-1599)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sacrificing his life in the battle. Established by Jang Eung-gi’s son, Jang Jun, after Jang Eung-gi was posthumously made a meritorious subject in 1605, the shrine was originally located in Soemeori Village (near today’s Cheolsan Joogong Apartment Complex No. 12), where it came to serve as not only a family shrine and a ritual house of the Deoksu Jang clan, but also as a guardian shrine of the village. It was later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due to urban development. As such, the shrine provides meaningful academic insight into the changes and adaptations of cultural heritage resulting from urban development.

영문 해설 내용

충의사는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1537-1599)의 휘하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장응기(?-1593)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장응기는 그 공을 인정받아 1605년 공신이 되었고, 이후 그의 아들 장준이 쇠머리마을(지금의 철산주공 12단지 아파트 인근)에 사당을 세웠다. 이후 충의사는 덕수장씨 선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자 문중의 재실이기도 했으며, 마을을 지키는 제당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사당은 이후 도시가 개발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도시개발에 따른 문화유산의 변화와 적응 실태를 고찰할 수 있어 학술적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