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충의사
HeritageWiki
| 충의사 |
|
| 대표명칭 | 충의사 |
|---|---|
| 지정(등록) 종목 | 광명시 향토유산 |
해설문
국문
충의사(忠義祀)는 400여 년 전 충의공 장응기(忠義公 張應麒,?~1593)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용맹하게 싸운 공을 인정받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3등에 책봉된 후 그의 아들 장준이 쇠머리마을(철산동)에 위패를 배향한 곳 이다.
충의사는 덕수장씨 4대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자, 왕재산 자락에 자리한 재실(齋室)이기도 했으며, 마을을 지키는 제당(祭堂)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충의사는 광명시의 개발 이전에는 왕재산 옆 철산주공 12단지 옆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사진 자료만 남아있고, 개발 이후 현재의 터로 이전되어 현존하고 있다, 도시개발에 따른 문화유산의 변화와 적응 실태를 고찰할 수 있는 학술적 의미가 크다는 것이 특징이다.
- 본문 내 한자 표기 확인 필요. 忠義祀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충의사는 덕수장씨 선조인 장응기(?-159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장응기는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1537-1599)의 휘하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 공을 인정 받아 1605년 공신이 되었고, 이후 그의 아들 장준이 철산동에 사당을 세웠다.
이후 충의사는 덕수장씨 4대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자 문중의 재실이기도 했으며, 마을을 지키는 제당(祭堂)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원래 지금의 철산주공 12단지 아파트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광명시의 도시 개발 이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도시개발에 따른 문화유산의 변화와 적응 실태를 고찰할 수 있어 학술적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