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학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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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당
Hakpodang Hall
학포당,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학포당
영문명칭 Hakpodang Hall
한자 學圃堂
주소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길 74-3 (쌍봉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남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1986년 2월 7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학포당,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학포당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서화가인 학포 양팽손이 사용하던 서재이다.

양팽손은 능성현(이양)에서 태어나, 중종 5년(1510)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중종 11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언(正言)과 교리(校理)를 역임하였으나,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관직에서 삭탈되었다.

기묘사화의 여파로 신사무옥(1521)이 발생하자 관직에 나아가기를 단념하고 학포당을 지어 은거하였다. 제자를 가르치고 시문과 서화를 즐기며 지내다가 중종 32년(1537)에 복관되어 1544년에 용담현령을 지냈다.

양팽손은 서화에 뛰어나 호남 화단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저서로 『학포유집』이 전한다.

현재의 학포당은 1920년, 원래 자리에 원형을 살려 복원한 것으로 조선시대 서재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영문

Hakpodang Hall

Hakpodang Hall was first established in 1521 as the study hall of Yang Paeng-son (1488-1545, pen name: Hakpo), a civil official and calligraphe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Over time, the original building fell into disrepair and was eventually demolished. The current building was constructed in 1920 by Yang’s descendants. It measures three bays in width by three bays in depth and has a hip-and-gable roof. Next to the hall is a large ginkgo tree said to have been planted when the hall was first built.

Yang Paeng-son was born in Ssangbong-ri Village where Hakpodang Hall is located. Considered a child prodigy, Yang showed high intelligence and excelled at drawing from a young age.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16 and served in several official posts, but returned to his hometown when he lost his official post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19. He then built Hakpodang Hall where he lived in seclusion, teaching his disciples and enjoying poetry and painting.

영문 해설 내용

학포당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양팽손(1488-1545, 호: 학포)의 서재로 1521년에 건립되었다. 원래의 건물은 퇴락하여 없어졌고, 지금의 건물은 1920년 후손들이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고, 팔작지붕을 얹었다. 옆에는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학포당을 지을 당시에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양팽손은 학포당이 위치한 쌍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신동이라 불렸고, 서화에도 능하였다. 1516년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으나, 1519년 사화로 관직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학포당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시화를 즐기며 은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