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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오충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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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8월 26일 (월) 03:31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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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오충렬유적
"삼세오충렬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삼세오충렬유적
한자 三世五忠烈遺蹟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48-29
지정(등록) 종목 시도기념물 제61호
지정(등록)일 1982년 8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수량/면적 11,018㎡
웹사이트 "삼세오충렬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삼세오충렬유적은 삼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해주오씨 다섯 충신의 무덤과 이들을 기리는 사당인 충렬사가 있는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과 그의 아들 욱(稶), 직(稷),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邦彦)을 모시고 사충사라 하였으나 근래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 도 함께 모시면서 오충사라 하고 있다.

오응정(1548~1597)은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두 아들 욱, 동량과 함께 순절했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은 광해군 때 중국 요동에서 후금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오직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샛강에 몸을 던졌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이들을 기리기 위해 충렬사를 세웠다. 이곳에는 다섯 충신과 그 선조의 무덤, 삼신단, 정려각, 신도비 등이 있다.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the Five Loyal Subjects in Three Generations

This historic site includes tombs and a shrine commemorating the five loyal subjects from the Haeju O Clan whose three generations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 country. The five loyal subjects refer to O Eung-jeong (1548-1597) and his three sons, Uk (1571-1597), Jik (1575-1619), Dong-ryang (1577-1597) and the son of Jik, Bang-eon (1588-1637).

O Eung-j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4. With the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s in 1592, he escorted King Seonjo (r. 1567-1608) and the royal family members to refuge near the northern border of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second Japanese invasions in 1597, O Eung-jeong and his two sons, Uk and Dong-ryang, fought at the Battle in Namwonseong Fortress. As the battle turned out to be a complete defeat, O killed himself and his two sons by firing a powder magazine. O’s another son, Jik, was killed in a battle with the army of Later Jin in Liaodong, China. Jik’s son, Bang-eon, threw himself into a river when King Injo (r. 1623-1649) surrendered to the Manchus in the Manchu invasion of 1636-1637.

The shrine commemorating these five figures is named “Ochungsa,” meaning “a shrine of five loyal subjects.”

영문 해설 내용

삼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해주오씨 다섯 충신의 무덤과 이들을 기리는 사당이 있는 곳이다. 다섯 충신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오응정(1548-1597)과 그의 아들인 욱(1571-1597), 직(1575-1619), 동량(1577-1597), 그리고 직의 아들인 방언(1588-1637)이다.

오응정은 1574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재위 1567-1608)가 의주로 피난갈 때 호종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아들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참패하자 아들들과 함께 화약고를 터뜨려 순절하였다. 오직은 17세기 초에 중국 요동에서 후금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오직의 아들 방언은 병자호란 때(1636)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한강에 몸을 던졌다.

이들을 기리는 사당의 이름은 ‘오충사’ 즉 ‘다섯 충신의 사당’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