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 영정
| 김관 영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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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 영정,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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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김관 영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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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金瓘 影幀 |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갑천면 갑천로 865-8 (상대리) |
| 지정(등록) 종목 |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2001년 12월 29일 |
| 분류 |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
| 시대 | 시대미상 |
| 수량/면적 | 1폭 |
| 웹사이트 | 김관 영정,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김관 영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김관(金瓘, 1425~1485)의 영정이다. 김관은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영중(瑩仲), 호는 묵제(黙齊), 시호는 공양(恭襄)이며, 고려의 무신 문하시중 김취려(金就礪) 장군의 9대손이다.
조선 세종 29년(1447)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종 1년(1451)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권지 승문원부정자*에 임명되며 관리가 되었다. 세조 10년(1464) 전라도경차관*을 거쳐 세조 11년(1465) 예조정랑에 이르렀고, 이후 병조정랑, 병조참의, 이조참의를 지냈다.
세조 13년(1467)에 발발한 함경도 이시애의 난에서 활약한 공을 인정받아‘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2등에 훈공이 기록되었고 종부시정에 임명되었다. 강원도*, 충청도, 황해도, 영안도관찰사를 역임하다가 성종 10년(1479)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다. 성종 12년(1481) 전주 부윤(府尹)을 지내다가 성종 14년(1483) 사은사(謝恩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후 전라도관찰사, 병조판서, 좌찬성 자리까지 올랐다.
김관은 성종 16년(1485) 향년 61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이때 대광보국숭정대부(大匡輔國崇政大夫) 의정부 우의정으로 품계를 높여 추증받았다. 공양공(恭襄公) 시호는 왕이 하사했으며, 경기 파주시 진동면 용산리 방축동에 김관의 묘가 있는데 성종이 직접 유릉(柳陵)이라 명명하였다.
현재 영정각에 봉안된 김관 영정은 가로 88cm, 세로 154cm 크기이다. 왼쪽 얼굴을 약간 돌린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에 발을 발판 위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전형적인 조선 전기 공신도상* 형식과 화법을 보인다. 원본을 옮겨 그린 이모본(移模本)으로 추정되나 필선이 뛰어나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 : 승문원 경서(經書) 및 기타 문서의 교정을 맡아보던 종구품 벼슬
- 경차관(敬差官) : 국왕으로부터 특정한 임무를 부여받고서 지방으로 파견되었던 사신(使臣)
- 적개공신(敵愾功臣) : 조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 김관은 세조 14년(1468) 강원도관찰사 부임 당시 왕명으로 양양 낙산사를 크게 중수하였다.
- 공신도상(功臣圖像) : 공신 및 자손들에게는 치하와 보상의 의미로, 백성들에게는 귀감이 되게 하려는 의도로 내려진 공신의 초상화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그림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관(1425-1485)의 초상화이다. 김관은 언양김씨이고, 고려시대의 무신으로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내고 최고위 관직에 오른 김취려(1172-1234)의 9대손이다.
김관은 1447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1년 문과에 합격한 뒤 예조, 병조, 이조 등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1467년에는 함경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데 활약한 공을 인정받아 공신이 되었다. 이후 강원도, 충청도, 황해도, 영안도의 관찰사를 역임하다가, 1479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481년 전주 부윤을 지내다가 1483년 다시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후 전라도 관찰사, 병조판서, 좌찬성 자리까지 올랐다. 1485년 세상을 떠난 후에는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성종이 직접 공양공(恭襄公)이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김관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에 있다.
김관 영정은 가로 88cm, 세로 154cm 크기이다. 왼쪽 얼굴을 약간 돌린 채 발을 발판 위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며, 전형적인 조선 전기 공신도상의 형식과 화법을 볼 수 있다. 원본을 옮겨 그린 이모본으로 추정되며, 필선이 뛰어나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 시호 뜻: 공경히 섬겨 윗사람을 받드는 것을 공(恭)이라 하고, 일로 인하여 공이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한다.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606021_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