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충신문
충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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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충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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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臣門 |
주소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477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등록)일 | 2006년 2월 1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시대 | 1692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충신문,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충신문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운 박이현(朴而絢)과, 이괄의 난 때 순국한 그의 아들 박영서(朴永緖)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정려각(旌閭閣)이다. 정려각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근처나 마을 입구에 세우는 작은 건물이다. 충신문은 세워진 시기가 비교적 오래고 원래의 형태가 잘 유지되고 있으며, 박이현과 그의 아들 박영서의 충절이 높아서 역사적, 교육적으로 의의가 있는 건물이다.
박이현 의병장은 조식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김면의 의병군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성주의 가천 전투에서 전사한 후에 공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이후 그의 아들 박영서가 이괄의 난 때 순국함으로써 박이현은 다시 공조 판서에 가증**되고 의민(毅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박영서 창성(의주 지역)부사는 무과에 급제한 후,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 때 도원수**** 장만의 선봉장이 되어 황주(황해도 지역) 신교 전투에 참가하였을 때 순국하였다. 이후 그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추증(追贈):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그의 관직을 높여 주던 일
- 가증(加贈): 이미 추증되어 관직에 오른 사람에게 다른 사유로 그 관직을 다시 올려주던 일
- 시호(諡號): 왕, 왕비를 비롯해 벼슬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받는 특별한 이름
- 도원수: 고려나 조선 시대에, 전쟁이 났을 때 군무를 통괄하던 임시 무관 벼슬
영문
Chungsinmun Gate, Seongju
Chungsinmun Gate was built in 1692 to enshrine commemorative plaques for the loyalty of Bak I-hyeon (1544-1592), a leader of a civili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his son, Bak Yeong-seo (?-1624).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 pavilions near the honored family’s home or at the entrance of the village.
Bak I-hyeon participated in and made great contributions to the civilian armi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so after he was killed during the Battle of Gacheon in Seongju, he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third minister of public works. In 1624, when a revolt broke out, Bak Yeong-seo fought against the rebels in the Hwangju area of Hwanghae-do Province, sacrificing his life in the battle, for which he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the post of minister of military affairs. When his son was promoted, Bak I-hyeon was promoted again to minister of public works. In 1625, the two people were bestowed with commemorative plaques for their loyalty.
Well-preserved in its original state, Chungsinmun Gate is a building which holds significant historical and educational importance as it represents the loyalty of Bak I-hyeon and Bak Yeong-seo.
- I found 충신문 translated as Commemorative Plaque in 권종 충신문, but maybe it can be translated as Chungsinmun Gate to suit the content of the text better as it is referred to as a building and also there is a mention of 정려 which is actually the plaque
영문 해설 내용
충신문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박이현(1544-1592)과 아들 박영서(?-1624)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를 모시기 위해 1692년에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근처나 마을 입구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박이현은 임진왜란 때 의병군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성주의 가천 전투에서 전사한 후에 공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박영서는 1624년 반란이 일어나자 황해도 황주 지역에서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고, 병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아들이 추증되면서 박이현은 공조 판서로 다시 추증되었다. 두 사람의 충절을 기려 1625년 정려가 내려졌다.
충신문은 원래의 형태가 잘 유지되고 있으며, 박이현과 박영서의 충절을 상징하여 역사적, 교육적으로 의의가 있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