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두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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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두산고택
Dusan House, Andong
대표명칭 안동 두산고택
영문명칭 Dusan House, Andong
한자 安東 斗山故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현곡길 10-3 (현하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18년 7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안동 두산고택,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두산고택은 동래 정씨 두산 정성관이 19세기 후반에 지은 가옥으로, 1903년 같은 해에 태어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정휘동과 정한모가 배출된 곳이다. 정성관의 증손자 중에서 맏이인 정휘동은 재산 대부분을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고 정성관의 손자 정한모는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길안현골 정 부잣집’으로 불렸지만 독립운동으로 인해 쇠락한 뒤 복원되는 과정을 거친 두산고택의 역사는 한국 정신문화 복원의 과정이다.

두산고택의 뒤로는 매봉산 자락이 뻗어 있고 앞으로는 길안천의 지류인 현하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명당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곳을 고려 시대 길안현의 관아터로 추정하기도 한다. 두산고택은 원래 상당한 규모를 갖춘 가옥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퇴락하였고 2023년에 안채가 복원되었다. 남아 있던 안채의 형태로 보아 경상북도 북부 지방 양반 가옥의 전형적인 ‘ㅁ’자형 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 군자금: 군사상 필요한 모든 자금

영문

Dusan House, Andong

Dusan House was founded in the late 19th century by Jeong Seong-gwan (1831-1909, pen name: Dusan) of the Dongnae Jeong clan. The property is located in front of Maebongsan Mountain and behind Hyeonhacheon Stream, making it an auspicious site according to Korean feng shui principles. Over time, the once large estate fell into disrepair, leaving only the women’s quarters. Based on the layout of the remaining women’s quarters, which underwent a major reconstruction in 2023, it is thought that the house once had an overall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as is typical for traditional upper-class residences in northern Gyeongsangbuk-do Province.

This house was the birthplace of Jeong Seong-gwan’s grandson and great-grandson, Jeong Han-mo and Jeong Hwi-dong, who devoted themselves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Jeong Han-mo was active in raising funds but faced hardships as he was arrested by the police, while Jeong Hwi-dong sold most of his property to financially support the movement.

영문 해설 내용

두산고택은 동래정씨 정성관(1831-1909, 호: 두산)이 19세기 후반에 지은 가옥이다. 뒤로는 매봉산 자락이 뻗어 있고 앞으로는 현하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상당한 규모를 갖춘 가옥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퇴락하여 안채만 남게 되었다. 남아 있던 구조를 토대로 2023년에 안채가 복원되었으며, 안채의 형태로 보아 경상북도 북부 지방 양반 가옥의 전형적인 ‘ㅁ’자형 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은 정성관의 손자 정한모와 증손자 정휘동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정한모는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고, 정휘동은 재산 대부분을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