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철장
달천철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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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달천철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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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川鐵場 |
주소 | 울산광역시 북구 달천동 1-7 외 |
지정(등록) 종목 | 울산광역시 기념물 |
지정(등록)일 | 2003년 4월 2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산업생산/광업/금속광산 |
시대 | 삼한∼조선시대 추정 |
수량/면적 | 1개소 |
웹사이트 | 달천철장,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철장이란 철의 원료인 토철, 또는 철광석을 캐는 곳이다. 달천동 및 상안동 일대에 분포하는 달천철장은 원래 이름인 달내[達川]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역사는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문헌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과 『후한서(後漢書)』에는 ‘한(漢)·예 (濊)·왜(倭) 모두가 여기서 철을 가져가며, 시장에서 철을 사용하여 매매하는 것이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라는 기사가 있다.
달천철장이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난 것은 조선 세종 때부터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1452년 달천에서 생산된 철 12,500근이 수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달천철장의 철은 경주 황성동의 제철 유적에서 출토된 철과 함께 비소 성분이 확인되어 역사적으로 중요성을 가진다.
2008년에 달천철장에서 삼한~조선 시대의 채광(採鑛) 유구, 청동기~삼한 시대의 집터 등이 발굴되었다. 채광 유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철광석 채광과 관련된 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달천동과 상안동에 걸쳐 분포하는 달천철장은 철의 원료인 토철 또는 철광석을 캐는 곳이다. 삼한 시대부터 20세기까지 채광이 이루어진 곳이며, 이곳에서 채취되었던 철은 비소 함량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달천철장이 한국 문헌에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인 15세기 때부터이다.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1452년 달천에서 생산된 철 12,500근이 수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채광이 중단되었다가, 17세기부터 다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채광이 이루어졌으나 토철이 바닥나면서 1993년에 폐광되었다.
2008년에 달천철장에서 삼한~조선 시대의 채광(採鑛) 유구, 청동기~삼한 시대의 집터 등이 발굴되었다. 채광 유구는 한국에서 최초로 확인된 철광석 채광과 관련된 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