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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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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4년 12월 6일 (금) 16:0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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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문
대표명칭 충신문
한자 忠臣門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477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06년 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시대 1692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충신문,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충신문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운 박이현(朴而絢)과, 이괄의 난 때 순국한 그의 아들 박영서(朴永緖)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정려각(旌閭閣)이다. 정려각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근처나 마을 입구에 세우는 작은 건물이다. 충신문은 세워진 시기가 비교적 오래고 원래의 형태가 잘 유지되고 있으며, 박이현과 그의 아들 박영서의 충절이 높아서 역사적, 교육적으로 의의가 있는 건물이다.

박이현 의병장은 조식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김면의 의병군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성주의 가천 전투에서 전사한 후에 공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이후 그의 아들 박영서가 이괄의 난 때 순국함으로써 박이현은 다시 공조 판서에 가증**되고 의민(毅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박영서 창성(의주 지역)부사는 무과에 급제한 후,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 때 도원수**** 장만의 선봉장이 되어 황주(황해도 지역) 신교 전투에 참가하였을 때 순국하였다. 이후 그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추증(追贈):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그의 관직을 높여 주던 일
  • 가증(加贈): 이미 추증되어 관직에 오른 사람에게 다른 사유로 그 관직을 다시 올려주던 일
  • 시호(諡號): 왕, 왕비를 비롯해 벼슬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받는 특별한 이름
  • 도원수: 고려나 조선 시대에, 전쟁이 났을 때 군무를 통괄하던 임시 무관 벼슬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충신문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박이현(1544-1592)과 아들 박영서(?-1624)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를 모시기 위해 1692년에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근처나 마을 입구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박이현은 임진왜란 때 의병군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성주의 가천 전투에서 전사한 후에 공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박영서는 1624년 반란이 일어나자 황해도 황주 지역에서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고, 병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아들이 추증되면서 박이현은 공조 판서로 다시 추증되었다. 두 사람의 충절을 기려 1625년 정려가 내려졌다.

충신문은 원래의 형태가 잘 유지되고 있으며, 박이현과 박영서의 충절을 상징하여 역사적, 교육적으로 의의가 있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