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설당상
최송설당 상 Statue of Choe Songseold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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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최송설당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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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atue of Choe Songseoldang |
한자 | 崔松雪堂 像 |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송설로 90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등록문화유산 |
지정(등록)일 | 2012년 6월 19일 |
분류 | 등록문화유산/기타/동산 |
수량/면적 | 1점 |
웹사이트 | 최송설당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최송설당 상은 김천중고등학교 송설역사관에 소장된 최송설당의 동상이다. 최송설당은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英親王 李垠)의 보모상궁 출신으로 1931년에 자신이 평생을 통해 일군 전 재산으로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한 민족 사학 교육자이다.
이 동상은 원래 한국인 최초로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조각가 김복진이 1935년에 처음 만들었으나 1944년에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갔다. 현재의 동상은 김복진의 제자이자, 동경미술학교에서 목조각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미술학부를 설립한 조각가 윤호중이 1950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용접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리벳*으로 청동판을 연결해 조각상을 만든 특징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리벳(rivet): 금속판 따위를 이어 붙이는 데 쓰는 대가리 부분이 두툼한 굵은 못. 금속판을 포개어 구멍을 뚫은 후, 그 구멍에 못을 넣어 대가리 반대편을 두드리거나 찌그러뜨려서 이어 붙인다.
영문
Statue of Choe Songseoldang
This statue depicts Choe Songseoldang (1855-1939), an educator and entrepreneur born in Gimcheon. Since a young age, Choe learned Chinese classics as well as reading and writing* in the Korean script Hangeul from her father. She eventually moved to Seoul where befriended a number of women from influential families. Choe was eventually introduced to the royal court where she was hired as the nanny of the Korean Empire’s last crown prince Yi Eun. By the end of her service in the royal court which lasted about 10 years, she had accumulated significant financial power which allowed her to engage in charity work donating funds to Buddhist temples and women's organizations across the country. In 1931, she donated her entire life’s assets to found Gimcheon High School.
A statue of Choe Songseoldang was first made in 1935 by Kim Bok-jin (1901-1940) who was considered the most skilled sculptor in Korea at the time. The statue was seized by the Japanese authorities in 1944. The current statue was made in 1950 by Kim’s student Yun Ho-jung (1917-1967). The statue demonstrates sculpture techniques used before modern welding technology became widely available such as the use of rivets to connect the bronze sheets.
- I guess what they mean is “she learned reading and writing in hangeul” as opposed to hanmun, rather than “she simply learned the Korean alphabet”.
영문 해설 내용
김천 출신의 작가이자 교육사업가인 최송설당(1855-1939)의 동상이다. 최송설당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한학과 한글을 배웠다.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권문세가의 부인들과 교류하였고, 입궐하여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이은()의 보모가 되었다. 10여 년 후 궁에서 나올 무렵 최송설당은 거대한 재력을 갖추게 되었고, 전국의 사찰이나 부인 단체 등에 기부하는 등 자선사업을 이어갔다. 1931년에는 평생을 통해 일군 전 재산으로 김천고등보통학교(지금의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최송설당의 동상은 원래 당대 최고 조각가로 평가받던 김복진(1901-1940)이 1935년에 처음 만들었으나, 1944년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갔다. 이 동상은 김복진의 제자인 조각가 윤호중(1917-1967)이 1950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용접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리벳으로 청동판을 연결해 만들어, 당시의 동상 제작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