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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호부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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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4년 11월 13일 (수) 08:58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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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호부관아
인천도호부 관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인천도호부관아
한자 仁川都護府官衙
주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 (문학동)
지정(등록) 종목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지정(등록)일 1982년 3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동 / 17,589.9㎡
웹사이트 인천도호부 관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도호부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때 행정과 국방상으로 중요한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기관이다. 인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시기는 세조 5년(1459)이다. 인천도호부 관아 건물의 설치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조선 세조 때의 문신인 강희맹이 1424년에 기록한 『인천부승호기』에 객사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어 그 이전에 건물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부·군·면 통폐합 당시 부평과 인천의 일부를 합한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부천군의 청사 건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1917년에는 도호부 관아에 현재 문학초등학교의 전신인 부천공립보통학교의 설립이 인가되며 관아의 규모가 축소되었고, 관아 건물 가운데 객사와 동헌 일부만을 교정 안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 초하루와 보름에 지방 수령이 예를 올리던 곳으로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동헌은 지방 수령이 업무를 보던 건물로 일반 행정 업무나 재판 등이 행해진 곳이다.


  • 전패(殿牌): 임금을 상징하는 ‘패(殿)’ 자를 새겨 각 고을의 객사에 세운 나무패. 공무(公務)로 간 관리나 그 고을 원이 절을 하고 예(禮)를 표시하였다.

영문

Incheon-dohobu Government Office

This is the former site of the Incheon-dohobu Government Office. A dohobu was a kind of local government office during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established in the areas of great administrative and military importance. While Incheon received the status of a dohobu in 1459, it is unknown when exactly a government office was built here for the first time.

After a part of Incheon and Bupyeon were merged into Bucheon-gun County in 1914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is government office building temporarily houses Bucheon-gun County Office. The office's scale was reduced when the construction of a school was approved on its site in 1917. At the time, only the guesthouse and a part of the magistrate’s office were moved to their current location inside the school grounds.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in 1945, the original buildings were destroyed either by fire or due to city development. In 2002, the magistrate’s office and the guesthouse were built anew.

The magistrate’s office was the workplace of the head of the government office. The guesthouse consisted of a shrine with a wooden tablet symbolizing the king and rooms used as temporary lodging for important guests or officials visiting the region on duty. On the first day and the full moon of each month, the magistrate performed a ceremony of bowing toward the royal capital in the guesthouse’s shrine.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인천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터이다. 도호부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행정과 국방상으로 중요한 지역에 설치되던 지방 행정기구였다. 인천은 1459년 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관아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당시 부평과 인천의 일부를 합한 부천군이 신설되었고, 이 관아 건물은 부천군의 청사 건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1917년에는 이곳에 학교 설립이 인가되어 관아의 규모가 축소되었고, 관아 건물 가운데 객사와 동헌 일부만을 교정 안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원래의 건물들은 해방 이후 화재로 소실되거나 도시 개발에 따라 헐렸고, 2002년에 동헌과 객사를 다시 지었다.

동헌은 수령이 업무를 보던 건물이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지방 수령이 예를 올리던 곳이고,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