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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고아리(산 4-1번지 일원) 단독주택 신축공사부지 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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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고아리(산 4-1번지 일원) 단독주택 신축공사부지 내 유적
대표명칭 고령 고아리(산 4-1번지 일원) 단독주택 신축공사부지 내 유적



해설문

국문

본 유적은 ‘고령 고아리 고분군’이 분포하는 구릉의 동사면 말단에 위치하며, 7세기대부터 조선시대 전기에 이르는 건물지와 기와가마 등이 조사되었다. 3구역의 건물지군에서 나타나는 완사면을 계단상으로 조성한 대지에 주축이 맞는 건물들의 정연한 배치형태, 수막새의 문양, 적심의 축조공법, 전적이중기단 등의 특징은 백제지역에서 주로 보이는 기술들로서 당시 고령지역과 백제와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단판연화문수막새·전돌 등의 와전류, 이와 함께 출토된 단각고배·인화문토기편 등의 유물로 볼 때 7세기 전반에 처음 조성된 유적으로 판단되며, 기와가 대량으로 출토되고, 건물지의 규모가 상당하므로 당시 고령지역의 관아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 건물지군은 건물지 1호와 중복된 고려시대 기와가마의 존재로 볼 때 고려시대 이전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고령지역 관아는 쾌빈리 일대가 되고, 본 유적 일대는 기와가마를 조성하여 고령지역의 기와 생산을 담당하였다. 본 유적은 7세기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고령지역의 관아에서부터 기와생산지까지 한 지역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특히 3구역에 조성된 7세기대 건물지군은 역사적·학술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이에 원지형보다 최대 5.4m 가량 복토하여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하였고, 전적이중기단이 축조된 건물지 2호의 자리는 주변 일대와 함께 건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공원을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길 수 있게 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