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진 관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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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진 관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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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금정진 관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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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井鎭 官衙址 |
주소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280 |
지정(등록) 종목 | 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
지정(등록)일 | 2006년 7월 3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시대 | 조선시대 후기 |
수량/면적 | 8,897㎡ |
웹사이트 | 금정진 관아터,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금정진 관아터는 금정산성을 관리하는 방어 시설이 있던 터이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가 금정산성 중성을 축성할 때 금정산성과 산성 일대를 관리하기 위해 금정진 관아를 함께 지었다.
관아의 처음 규모는 좌기청 6칸, 좌우행랑 각 5칸, 군기고 4칸, 화약고 1칸, 내동헌 3칸, 별전청 4칸 크기였으나, 1824년 동래부사 이규현이 금정산성 안에 또 다른 건물을 짓고 진장*을 배치하는 등 증축하였다. 평상시에는 금정산성 안의 해월사와 국청사 승려들이 성의 보수와 유지를 담당하였으나 그 뒤 일제에 의해 금정진 건물들이 파괴되고 여기에 있던 무기 또한 몰수당하였다.
발굴 조사에서 20~50cm 규모의 크고 작은 할석*을 이용해서 만든 금정진 관아터 석축유구遺構石築를 확인하였다. 현재는 금정진 관아의 담장 또는 석축으로 추정되는 일부 유구들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동래부지』 「관해조」 및 1872년 제작된 「금정산성진지도」 등에는 금정산성 안 시설물의 위치 관계뿐만 아니라 금정진 관아의 건물 규모와 함께 관아의 배치 관계를 보여주는 내용이 남아있다.
금정진 관아터는 옛 관아의 규모, 운영, 직제, 성격뿐만 아니라 그곳에 머물던 관군과 승군들의 생활상 등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 진장(鎭將): 조선시대에 둔 각 진영(鎭營)의 으뜸벼슬
- 할석(割石): 깬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