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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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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재
대표명칭 대월재
한자 對越齋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들성로 133 (원호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02년 7월 15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棟)
웹사이트 대월재,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대월재는 조선 중기 구암 김취문(久庵 金就文)이 강학* 공간으로 지은 건물이다. 김취문은 조선 중종 때부터 명종 때까지 주요 관직에 있었던 청백리**이다.

‘대월재’라는 이름은 주자***의 책『경재잠(敬齋箴)』에서 따온 것으로 현판의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 해관 윤용구가 썼다.

건물은 조선 중종 38년(1543) 들성 거정동(웃골)에 처음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전쟁에 휘말려 일부가 소실되었다. 이후 대월재는 숙종 3년(1677)에 복원하여 서당과 종회소(宗會所)로 활용하였고, 고종 5년(1868)에 다시 고쳐 지었다. 이후 2010년에 지금의 위치로 건물을 옮겨 오늘날에 이른다.


  • 강학(講學): 학문을 닦고 연구함.
  • 청백리(淸白吏): 조선시대에, 재물 욕심이 없고 청렴한 모범 관료에게 수여한 칭호.
  • 주자(朱子):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를 높여 부르는 말.

영문

Daewoljae Lecture Hall

Daewoljae Lecture Hall was first built in 1543 as a lecture hall in Deulseong Village in Wonho-ri, the hometown of Kim Chwi-mun (1509-1570),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partially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rebuilt in 1677 to be used as a village study hall by the village and as Seonsan Kim Clan Assembly Hall by the family of Kim Chwi-mun’s descendants. In 1868, it was renovated again and in 2010,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After Kim Chwi-mu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37, he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As he was a man of great integrity since a young age and upright when serving official posts, he was granted(?) the honorable title of Pure and Untarnished Official (Cheongbaengni).

The name Daewoljae comes from Admonition on Seriousness (Gyeongjaejam 敬齋箴) by Zhu Xi (1130-1200) and means to take care devotedly as if facing a mourner with admiration(?). The plaque bearing the name of the house was calligraphed by the renowned calligrapher Yun Yong-gu (1853-1939).

영문 해설 내용

대월재는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취문(1509-1570)이 1543년 고향인 원호리 들성마을에 강학공간으로 처음 지었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되어 1677년에 다시 지었고, 마을의 서당과 김취문의 후손인 선산김씨 문중의 종회소로도 쓰였다. 1868년에 다시 고쳐지었으며, 201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김취문은 1537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였고, 관직을 지내면서도 청렴결백하여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대월재라는 이름은 주자의 『경재잠(敬齋箴)』에서 따온 것으로, 상제를 우러러 마주하는 듯한 지극한 정성을 뜻한다. 현판의 글씨는 명필 윤용구(1853-1939)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