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창령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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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창령사지
Changnyeongsa Temple Site, Yeongwol
영월 창령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월 창령사지
영문명칭 Changnyeongsa Temple Site, Yeongwol
한자 寧越 蒼嶺寺址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 1075
지정(등록) 종목 강원도 기념물 제81호
지정(등록)일 2003년 1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원(1,098㎡)
웹사이트 영월 창령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령사지는 두 차례 발굴 작업을 하면서 오백나한의 일부로 보이는 나한상을 비롯하여 여러 기와류, 도자기류, 철제류 등이 발견된 곳이다. 특히 ‘창령(蒼嶺)’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이 여러 문헌에 나오는 ‘창령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조각 수법으로 볼 때 나한상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이며, 함께 출토된 기와나 자기류 등이 16세기 전후의 유물인 것으로 보아 이 절이 처음 세워진 때는 15세기 말 이전인 것으로 추정한다. ‘창령사’는 이후 여러 문헌에 보이다가 18세기 말 이후의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1960년대까지 이 절터에 암자(큰 절에 딸린 작은 절)와 석탑이 있었다고 하나, 암자가 먼저 없어지고 탑은 1970년대에 도둑맞았다고 전한다.

영월 창령사지는 나한상과 함께 나한상을 모셨던 나한전터가 최초로 발굴된 중요한 유적이다.

영문

Changnyeongsa Temple Site, Yeongwol

Changnyeongsa Temple is presumed to have been established by the late 15th century and to have shut down by the late 18th century. Excavated in 2001 and 2002, the site was found to have various structural remains, including three building sites, the remains of a pagoda, and a stone retaining wall, as well as artifacts, such as roof tile shards and pottery from the 16th century. Inscriptions on the roof tile shards helped to identify the temple’s name, which can be found in historical records. Most notably, dozens of stone statues of arhats were discovered near one of the building sites, suggesting that the building was a hall for the veneration of the 500 arhats, or the perfected disciples of the Buddha. The statues are presumed to date to the late Goryeo (918-1392) or early Joseon (1392-1910) period.

It is said that a hermitage and a stone pagoda stood on the site until the 1960s. However, the pagoda was stolen in the 1970s after the hermitage closed.

영문 해설 내용

창령사는 15세기 말 이전에 창건되어 18세기 말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과 2002년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 3동, 탑지, 석축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16세기 전후의 기와와 자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문구가 새겨진 기와 조각을 통해 문헌에만 보이던 이 사찰의 이름이 확인되었다. 특히 건물지 한 곳에서는 다수의 나한상이 발견되어, 해당 건물이 오백나한상을 모셨던 곳으로 추정되었다. 나한상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까지 이 절터에 암자와 석탑이 있었다고 하나, 암자가 먼저 없어지고 탑은 1970년대에 도둑맞았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