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지(거제 둔덕기성)
동문지 東門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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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거제 둔덕기성 |
해설문
국문
문지(門址)는 문이 있던 터를 말한다. 둔덕기성(屯德岐城) 동쪽 성벽의 북편에 있는 동문지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거제고군현치소지(巨濟古郡縣治所址, 경상남도 기념물)가 있는 거림리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문루건물을 갖춘 것으로 보아 이 산성의 정문(正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서문지 및 남문지와 함께 대대적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동문지는 고려시대를 기준으로 정비한 것이다.
삼국시대의 동문지는 현문(懸門, 일명 다락문)으로 성벽의 일정 높이에 통로를 만들어 사다리 등을 통해 출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통로 너비는 약 8.8m에 이르는 큰 규모이며, 문지 부분의 성벽 두께도 7m~9m로 주변 성벽보다 훨씬 두껍게 축조하였다. 외벽은 바른층쌓기*로 반듯하게 쌓아올렸으며, 외벽 기단부는 기단보축**으로 보강하였다. 삼국시대 문지는 고려시대 문지 아래에 남아있다.
고려시대의 동문지는 붕괴된 삼국시대 문지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사용하였다. 통로 너비는 약 3.4m이며, 성벽의 두께는 약 4.4m 정도이다. 통로에는 계단을 만들어 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지는 허튼층쌓기***를 하여 삼국시대 문지에 비해 축조상의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통로부 내측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초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성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웅장한 문루임이 밝혀졌다.
- 바른층쌓기: 성벽을 축조할 때, 돌을 층마다 수평으로 줄눈이 일직선 되도록 쌓는 것
- 기단보축: 성벽의 외벽 기단부를 보강하기 위해 단면 삼각형으로 덧댄 석축 구조물로 신라 석축산성에서 보이는 특징
- 허튼층쌓기: 돌쌓기의 가로줄눈이 직선으로 되지 않게 불규칙한 돌을 흩트려 쌓는 방법으로 막쌓기라고도 부름. 고려시대 이후의 성벽 축조에 주로 이용된 방식인데, 수법이 조잡하여 성벽의 높이가 낮음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동쪽 성벽의 북편인 이곳은 둔덕기성의 동문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에서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관아가 있던 거림리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동문은 대규모의 문루였던 것으로 추정되어, 둔덕기성의 정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2009년 발굴조사 결과, 동문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서문지 및 남문지와 함께 대대적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동문지는 고려시대를 기준으로 정비한 것이다.
삼국시대의 동문은 성벽의 일정 높이에 통로를 만들고, 사다리 등을 통해 출입하도록 만든 현문 구조였다. 통로의 너비가 약 8.8m에 이르는 큰 규모였으며, 성벽 두께도 7-9m로 주변 성벽보다 훨씬 두껍게 축조하였다. 외벽은 바른층쌓기로 반듯하게 쌓아올렸으며, 외벽 기단부는 석축을 덧대어 보강하였다. 삼국시대 동문은 붕괴된 후 고려시대에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다시 지어졌고, 삼국시대의 문지는 고려시대의 문지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고려시대의 동문 역시 현문 구조로, 통로에는 계단을 만들어 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통로 너비는 약 3.4m이며, 성벽의 두께는 약 4.4m 정도이다. 외벽은 허튼층쌓기를 하여 삼국시대 문에 비해 축조상의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통로부 안쪽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초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성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웅장한 문루였던 점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