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응인 묘역
한응인 묘역 Tomb of Han Eung-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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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한응인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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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Han Eung-in |
한자 | 韓應寅 墓域 |
주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산86-6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57호 |
지정(등록)일 | 1995년 8월 7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한응인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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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이곳은 조선 중기 문신인 한응인(1554~1614)의 묘이다. 한응인은 청주(淸州) 한씨로 조선 선조 10년(1577)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주서·성균관 직강 등을 역임하다 선조 21년 정여립의 모반 사건을 적발하여 1등 공신에 올랐다. 선조 24년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하여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고 했던 사실을 명에 알리고 이듬해 돌아오는 길에 왜란이 일어나자 개성에서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만나 왕을 따라 평양으로 갔다. 이후 제도도순찰사(諸道都巡察使)로 임진강을 방어하였으나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에 패했다. 이후 명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명나라의 무장 이여송이 원군을 이끌고 오자 중국어에 능한 그가 맞이하였다. 이듬해 호조판서로 군량미 보급에 힘썼다. 이후 이조·병조판서를 거쳐 선조 40년에 우의정에 올랐다.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호하라는 유훈을 받았으나 광해군 5년(1613)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경기도 광주(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한응인은 부인 전주 이씨와 함께 묻혔으며 묘비와 신도비는 조성 당시의 것이다. 신도비는 옥개석에 기와지붕의 공포 모양을 조각해 놓음으로써 비석의 몸체가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을 덜어 주어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한 것이 특색이다.
- 계축옥사: 대북(大北)이 영창대군 및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옥사.
- 신도비: 생전의 행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우는 비.
- 공포: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영문
This is the tomb of Han Eung-in (1554-1614), a civil official of the mid-Joseon period.
Han Eung-i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7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1589, he prosecuted an act of treason and was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With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in 1592, he escorted King Seonjo (r. 1567-1608) when the king retreated from the capital Hanyang (today’s Seoul area) to Pyeongyang. He also went to Ming China as an envoy to request military reinforcement. After King Seonjo died, Han participated in a turbulent political dispute over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was stripped of his official post. In 1613, he returned to his hometown in Ansan and died the following year.
He is buried in the same mound with his wife Lady Yi. In front of the mound are a tombstone, a stone table, a stone incense table, two stone pillars, and statues of two civil officials. The stele, standing to the right of the mound, was erected in 1642.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문신인 한응인(1554-1614)의 묘이다.
한응인은 1577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589년에는 모반사건을 적발하여 공신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재위 1567-1608)가 피난할 때 왕을 호종했고, 이후 명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선조가 죽은 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에 휘말렸고, 1613년 고향인 안산으로 돌아와 은거하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묘는 부인 전주이씨가 함께 묻힌 합장묘이다. 봉분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이 있다. 묘역 오른쪽에는 1642년에 세워진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