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씨부인 권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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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부인 권선문
Gwonseonmun (Words to Encourage Good Deeds) by Lady Seol
설씨부인 권선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설씨부인 권선문
영문명칭 Gwonseonmun (Words to Encourage Good Deeds) by Lady Seol
한자 薛氏夫人 勸善文
지정(등록) 종목 보물 제728호
지정(등록)일 1981년 7월 15일
분류 기록유산/서간류/간독류/간독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첩(18폭)
웹사이트 설씨부인 권선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의 부인 설씨(薛氏, 1429∼1508)가 지은 권선문(勸善文)과 사찰도를 병풍처럼 묶어 제작한 문첩이다.

설씨부인은 성종 13년(1482) 봄에 신비로운 꿈을 꾸고 난 뒤, 이 지역에 있던 사찰인 강천사를 다시 세우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시주를 권장하는 권선문을 직접 지었고, 사찰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신도들에게 돌려보도록 했다.

원래는 한 폭의 두루마리였는데, 후손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1첩 16폭의 병풍 형식으로 만들었다. 전체 16폭 가운데 14폭은 권선문이고, 나머지 2폭은 사찰의 채색도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후손들의 집에 전해 내려오던 편지글과 권선문이 쓰여 있다.

이 권선문은 조선시대 여성 문인이 쓴 최초의 산문형식의 글로 신사임당의 글보다도 60여 년이 앞서 있다. 또한 조선 전기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 사찰을 복원하는 불사에 관심을 두고,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관련된 글을 썼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영문

Gwonseonmun (Words to Encourage Good Deeds) by Lady Seol

This letter was written in 1482 by Lady Seol (1429-1508), the wife of the civil official Sin Mal-ju (1429-1503), to encourage people to donate to the reconstruction of Gangcheonsa Temple. The letter included a prospective painting of the temple.

Lady Seol was prompted to have Gangcheonsa Temple rebuilt following a mysterious dream. The temple was once located in the area, but had fallen into ruin at the time.

Originally, the letter was on a single scroll, but the descendants transformed it into a 16-page folding screen in order to protect the document. Out of the 16 pages, 14 of them are the letter and two of them are the painting. On the back side of the folding screen, the descendants wrote the content of the letters passed down among the family.

This is the first text written in prose by a woman during Joseon period (1392-1910). It shows that a woman from an upper-class family in the early Joseon period was interested in rebuilding a temple, and it is noteworthy that she utilized the Buddhist concept of cause and effect to motivate people to donate to the reconstruction.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신말주(1429-1503)의 부인 설씨(1429-1508)가 지은 권선문(勸善文)과 설씨가 그린 사찰도를 엮어 제작한 문첩이다.

설씨부인은 1482년 봄에 신비로운 꿈을 꾸고 난 뒤, 이 지역에 있던 사찰인 강천사를 다시 세우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사찰 재건에 필요한 비용을 시주할 것을 권장하는 권선문을 직접 지었고, 사찰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신도들에게 돌려보도록 했다.

원래는 한 폭의 두루마기였는데, 후손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16폭의 병풍 형식으로 만들었다. 전체 16폭 가운데 14폭은 권선문이고, 나머지 2폭은 사찰의 채색도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후손들의 집에 전해 내려오던 편지글과 권선문이 쓰여 있다.

이 권선문은 조선시대 여성이 쓴 최초의 산문 형식의 글이다. 또한 조선 전기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 사찰을 복원하는 불사에 관심을 두고,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관련된 글을 썼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참고자료

  • 정훈, 「귀래정 신말주 연구」, 『한국언어문학』 92, 한국언어문학회, 2015.
  • 『세조실록』, 『성종실록』
  • 『귀래정 실기』, 귀래정 실기 간행 위원회, 1994.
→ 기존 안내문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신말주에 대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낙향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대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455년(세조 1) 계유정난의 공으로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1456년(세조 2) 대에는 사간원 정언, 사간원 우정언, 1459년(세조 5) 종사관, 사간원 우헌납, 1461년(세조 7) 예조 정랑, 1464년(세조 10) 사간원 사간, 1466년(세조 12) 사간원 대사간, 형조 참의, 1476년(성종 7) 전주부윤, 1479년(성종 10) 진주목사 이후 창원부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 첨지중추부사, 전라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순창에 머문 시간은 부인의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낙향한 1470년(성종 1)부터 다시 기록에 등장한 1476년(성종 7)까지 대략 7년 정도의 기간과 70세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난 1498년부터 죽음을 맞이한 1503년까지 6년 정도의 기간이다 .
결론적으로 그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은 절의의 인물이 아니고, 권선문이 제작된 시기인 1482년(성종 13)에 순창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그의 절의와 은거하는 선비의 이미지는 그와 친분이 있고 세조 정권에 참여하였던 서거정과 강희맹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서거정은 신말주가 지은 정자인 귀래정에 대해 「귀래정기」를 지어 주었고, 강희맹은 「전주부윤귀래정공신도비명」을 지어 주었는데, 신말주가 세조 즉위 후 낙담하여 낙향하였으나 형인 신숙주의 강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벼슬을 하였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순창을 그리워하고 은거하려 했다고 하였다.
또한 그의 10대 후손인 신경준은 「유허비명」을 지어 그가 벼슬길에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였다. 이는 신숙주의 문집이나 연대기 자료에는 볼 수 없는 기록으로 세조 정권 당시 관직에 나아간 신말주를 변호하는 입장에서 쓴 글이다.
그러므로 기존 안내문에 있는 신말주에 대한 설명은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