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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군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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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ichukova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11월 19일 (일) 05:48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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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
군자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군자정
한자 君子亭
주소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영주로 532-7 (고부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3호
지정(등록)일 1990년 6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군자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군자정은 연꽃이 있던 연못에 자리하여 연정(蓮亭)이라고도 불렸던 유명한 정자이다.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7세기 말엽 황폐해진 정자를 손질하여 고쳤다는 것으로 보아 최소 17세기부터 정자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군자정은 낡아서 허물어진 곳을 손보아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1905년의 보수 공사를 끝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소학교 건물과 헌병대 주재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군자정에는 예로부터 고부의 운세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설화에 따르면 17세기 고부에서는 과거 급제자 등과 같은 뛰어난 인재가 배출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이 군자정이 황폐하기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에 현종 14년(1673) 당시 군수였던 이후선(李厚先)이 정자를 수리하자 고을이 안정되었고, 과거 급제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영문

Gunjajeong Pavilion, Jeongeup

Gunjajeong Pavilion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replaced a pavilion that had fallen into disrepair at the end of the 17th century which suggests that the pavilion existed at least since the 17th century. It is located next to a pond which once had lotus flowers, so it is also called Yeonjeong. The current pavilion underwent a repair in 1905 an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it was used as a Japanese elementary school and a substation of the military police.

A myth related to the fortune of Gobu (today's Jeongeup area) has long been told about Gunjajeong Pavilion. According to the myth, Gobu didn't produce excellent talented men like successful state examination candidates in the 17th century and a rumor that that was because Gunjajeong Pavilion had fallen into disrepair, spread. Therefore, Yi Hu-seon, the local magistrate, repaired the pavilion in 1673 and it is said that after this, the county balanced and the number of successful state examination candidates grew.

영문 해설 내용

군자정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말엽 황폐해진 정자를 고쳐지었다는 것으로 보아 최소 17세기부터 정자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연꽃이 있던 연못가에 자리하여 연정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의 정자는 1905년에 보수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소학교 건물과 헌병대 주재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군자정에는 예로부터 고부(지금의 정읍 지역)의 운세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설화에 따르면 17세기 고부에서는 과거 급제자 등과 같은 뛰어난 인재가 배출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이 군자정이 황폐하기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에 1673년 당시 군수였던 이후선이 정자를 수리하였고, 이후 고을이 안정되고 과거 급제자가 늘어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