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학서도
학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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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학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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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鶴棲島 |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대리 339-1 |
지정(등록) 종목 |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85호 |
지정(등록)일 | 2022년 11월 3일 |
해설문
국문
이곳은 고려시대 국사를 역임했고 송광사 2대 주지였던 화순 출신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의 탄생 관련 유적지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기록되기를 배씨 성을 가진 처녀가 남산 아래 샘(자치샘)에 떠 있는 오이를 먹고 아들을 낳아 이곳에 버렸는데 학이 아이를 날개로 덮어 키워주었다 해서 이곳을 『학서도』라 했다.
이 곳 학서도는 1871년에 제작된 화순읍 지도를 보면 석불과 함께 큰 언덕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로 보아 학서도는 석불을 포함한 넓은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학서도에는 원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1927년 불이 나서 느티나무는 불에 타 없어지고 다시 느티나무를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 정자는 1997년 5월에 건립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학서도는 고려시대의 승려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의 탄생 설화와 관련한 유적지이다. 화순 출신인 혜심은 1202년 지눌(1158~1210)의 제자가 되어 출가하였다. 당시 최고 관직을 지낸 최우(?~1249)의 정신적 지주였고 고종(재위 1213-1259)이 최고의 법계인 대선사에 제수했을 정도로 크게 존경 받는 고승이었다.
18세기 후반에 발간된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에는 혜심의 탄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배씨 성을 가진 한 처녀가 남산 아래에 있는 자치샘에 떠 있는 오이 2개를 먹고 아들을 낳았다. 처녀는 아들을 한 언덕에 버렸는데, 학이 날아와 아이를 날개로 덮어주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겨 처녀는 아이를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이 아이가 바로 혜심이다.
이 곳 학서도는 1871년에 제작된 화순읍 지도를 보면 석불과 함께 큰 언덕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로 보아 학서도는 석불을 포함한 넓은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학서도에는 원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1927년 불이 나서 느티나무는 불에 타 없어지고 다시 느티나무를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 정자는 1997년 5월에 건립하였다.
갤러리
화순군지도 의궤도(1895)[1]
참고자료
- 『비변사 인 방안 지도』 「화순현」,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ks.ai/GC05600378
주석
- ↑ 和順郡地圖: 儀軌圖, 고려대학교 도서관 고지도 컬렉션. https://library.korea.ac.kr/oldmap/?id=46150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