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
의정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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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의정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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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議政府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558호 |
지정(등록)일 | 2020년 9월 2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1,300㎡ |
웹사이트 | 의정부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조선시대에 중앙 행정관청 가운데 가장 높은 관청으로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정치와 행정을 다루었던 의정부(議政府)가 있던 자리이다.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던 의정부 건물은 세 동이 나란히 있는 ‘3당 병립 형태’였다. 가운데에 한 단 높은 정본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획당과 협선당이 있었다.
정도전이 지은 『도평의사사청기(都評議使司廳記)』에 고려 말, 가장 높은 관청인 도평의사사를 묘사한 내용을 보면 ‘청사는 높고 큰 집이 가운데 있고 날개 같은 집이 손을 모으듯 좌우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초 의정부 건물도 이러한 모습을 계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빈터로 남아 있었으나, 고종 즉위 후인 1865년(고종 2년)에 다시 옛 제도에 따라 원래 자리에 중건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의정부는 내각(內閣)으로 개편되어 경복궁 안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의정부 터에 1909년~1910년에 걸쳐 벽돌조 양옥의 신청사를 건립하였고,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내부(內部)와 경기도청 건물로 사용되었다. 광복 후에는 미군정, 치안본부청사, 서울시경 별관 등으로 활용되다가 이들 기관이 모두 이전해 나간 후, 1997년부터 이 자리에 광화문시민열린마당이 조성되었다.
의정부는 조선 초 경복궁 앞 동편에 국정 최고 기구로 들어선 이래 고종 대 중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원래의 위치를 지킨 관청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의정부가 있던 터인 ‘의정부지’는 202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발굴조사로 중심 건물인 정본당과 그 좌우에 있던 석획당, 협선당의 위치와 규모가 확인되었다. 또 의정부 영역 안에 있던 내행랑과 후원의 연지와 정자, 우물의 유적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촬영된 사진 및 도면자료들과 일치한다.
의정부지는 조선시대 최상급 중앙 관청의 건물 배치 형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광화문 앞 광장을 둘러싼 역사적 경관을 구성하는 시설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의정부지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역사적 층위를 간직한 광화문 일대의 상징적인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