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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탁영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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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9월 15일 (금) 07: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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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탁영종택
청도 탁영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청도 탁영종택
한자 淸道 濯纓宗宅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145-1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161호
지정(등록)일 2008년 2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곽(1,418미터제곱)
웹사이트 청도 탁영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청도 탁영종택은 조선 초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인 탁영 김일손의 종택이다. 건물은 김일손의 문집 등을 보관한 영모각, 안채, 사랑채, 행랑채, 그리고 김일손 내외의 위패를 봉안한 부조묘*로 구성되어 있다.

부조묘는 조선 선조 11년(1578) 자계 서원에 김일손이 배향되자 종택이 있는 백곡에 건립되었다. 이후 조선 현종 2년(1661)에 자계 서원이 사액*되면서 사불천위*에서 공불천위*로 지위가 올랐다. 조선 헌종 10년(1844)에 후손 창윤(昌潤)이 노후된 부조묘를 다시 지었으며, 1940년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고쳐 지었다.

한편 김일손의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본관은 김해로, 토평리(백곡마을)에서 김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498년에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은 것이 문제가 되어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화를 당했다. 중종반정(1506) 이후 신원*되었다. 그 뒤에 이조 판서에 추증*되어 문민(文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 부조묘(不祧廟):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사당. 불천위란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이다.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땅에 묻고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되어 사당에 계속 두면서 제사를 지낼 수 있다.
  •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 사불천위(私不遷位): 문중에서 지정한 불천위.
  • 공불천위(公不遷位): 나라에서 지정한 불천위.
  • 사초(史草): 조선 시대에, 사관(史官)이 기록하여 둔 사기(史記)의 초고(草稿). 실록(實錄)의 원고가 되었다.
  • 신원(伸寃):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씻음.
  • 추증(追贈):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탁영종택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일손(1464-1498, 호: 탁영) 가문의 종택이다.

김일손은 이 종택이 위치한 토평리에서 태어났다. 1486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주로 관리를 감찰하거나 임금에게 간언하는 등 청빈함이 요구되는 관직을 두루 지냈다. 1455년 세조(재위 1455-1468)가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의 왕위를 빼앗자, 1457년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1431-1492)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는 글을 남겼고 김일손이 이 글을 사초(史草)에 실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고 김일손은 처형되었다. 1506년에 신원되었고 1830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 종택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김일손의 문집 등을 보관한 영모각, 김일손 내외의 위패를 봉안한 부조묘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유교 전통에 따르면 일반적인 사당에는 4대까지의 위패를 모실 수 있으나, 부조묘는 특별한 공훈이나 덕행이 있는 사람의 위패를 영원히 모실 수 있다. 탁영종택에는 1578년 김일손의 사당이 처음 지어졌고, 김일손을 기리는 자계서원이 1661년에 사액을 받으면서 부조묘가 되었다. 이 부조묘는 1844년에 다시 지었고 1940년에 고쳐 지었다.

참고자료